달러 인기 계속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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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호 29면

경제사학자 닐 퍼거슨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가 파이낸셜 타임스(FT) 27, 28일자에 ‘2009년의 역사’를 전망하는 글을 실었다. 그는 『거상(巨像):미국 제국의 흥망(Colossus: The Rise and Fall of the American Empire)』과 『현금의 지배(The Cash Nexus)』의 저자로 ‘가상 역사’에 일가견이 있다. 글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2009년을 회상하는 형식이다. 다음은 ‘예측된 침체의 연대기(Chronicle of a decline foretold)’라는 제목의 기고문 요약.

닐 퍼거슨이 본 2009년 세계

내년 전망 자체를 포기해야 했던 한 해였다. 예측은 적어도 세 번 이상 나쁜 쪽으로 수정해야 했다. 2007년 8월 시작된 ‘대진압(Great Repression·경기후퇴를 막기 위한 정부의 전방위 노력)’은 2009년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다. 이번 위기는 총생산이 3분의 1로 줄고 실업률이 25%에 달했던 1930년대의 대공황과는 확실히 달랐다. 각국 정부의 노력에도 2009년 내내 선진국 경제는 위축됐다.

문제의 근원은 미국의 자산 거품이었다. 많은 이가 2008년 말엔 최악의 상황은 지났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미국 집값은 계속 떨어졌다. 가계 빚이 집값을 웃돌았고, 주택 압류가 늘었으며, 모기지 담보 증권의 손실은 커졌다. 은행은 더 부실해졌다.

가계는 소비를 줄였고, 은행은 신규 대출을 피했다. 실업률은 10%로 치솟았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 혁신에 투자해 미국의 창발성을 살릴 수 있다. 쇼핑몰 대신 새 학교를 세우고, 더러운 파생상품 대신 청정 에너지를 생산할 필요가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1월 20일 취임 연설은 멋졌지만 시장은 더 악화됐다.
은행 부실은 눈덩이처럼 커지기만 했다. 6월 말 S&P500 지수는 96년 이후 최저 수준인 624까지 떨어졌다(26일 현재 868.80).

미국의 자동차 ‘빅3’는 대형 합병을 통해 ‘빅1’이 됐다. 일주일 뒤 티머시 가이스너 재무장관은 씨티그룹과 BOA 등 9개 대형 은행의 증자를 위해 3000억 달러의 추가 자금을 요청했다. 하지만 은행에 얼마만큼의 공적자금을 지원해야 자동차 회사에 저리 자금을 지원하기에 충분한지는 아무도 몰랐다.

1분기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디플레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썼다. 하지만 FRB가 돈을 푸는 족족 부실 은행들이 빨아들였다. FRB의 레버리지 비율은 75에 달했다. FRB가 ‘정부 소유의 헤지펀드’가 된 셈이다.

미 연방정부 사정도 나쁘긴 마찬가지였다. 모건스탠리는 2009년 재정적자가 GDP의 12.5%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로런스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이 오바마를 설득해 의료개혁을 연기하고 교육·연구개발·대외원조 투자비 인상 공약을 철회하지 않았다면 재정적자는 더 커졌을 것이다.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의 걱정과 달리 미 국채에 대한 전 세계 투자자의 애정은 식지 않았다. 재정적자가 네 배로 늘었지만 국채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로 장기 이자율이 연 3%대로 떨어졌다.

달러의 패주(敗走)도 없었다. FRB가 정신없이 돈을 찍어 내도 외국인은 여전히 달러를 찾았다. 2009년의 달러 가치는 되레 올랐다. 미국은 여전히 안전한 피난처였다.
미국 이외의 세계 각국 입장에서도 2009년은 처참한 한 해였다. 일본은 엔고와 소비심리 악화로 90년대 겪었던 ‘잃어버린 10년’에 다시 빠졌다. 유럽도 비슷했다. 권한을 쥔 재무 당국이 없는 유럽의 재정정책은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났을 뿐이다.

중국은 미 국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위안화 가치가 높아지는 것을 막았다. ‘차이메리카(Chimeirca·중국과 미국)’는 위기에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위기로 덕을 봤다. 4월 오바마는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열린 ‘G2’ 회의에 참석했다.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는 끝났다. 하지만 힘은 상대적이다. 오바마는 연말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올해 가난해졌지만 다른 나라는 더 가난해졌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여전히 선두에 있을 것이다. 모두가 맹인인 세상에서는 애꾸가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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