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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프리즘>드라마 '꿈의 궁전'서 새 변신 탤런트 이응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분위기파'에서'연기파'로.

연기자 이응경(32)의 요즘 변화를 지켜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수긍할만한 표현이 아닐까.

사실 SBS 주말극장 '꿈의 궁전'(극본 윤정건.연출 운군일)에서 극중 양금숙으로 분한 이응경의 연기는 봄맞아 물오른 버들강아지인양 한창 파릇파릇 피어나고 있다.

학력 콤플렉스에 빠진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꿈의 궁전'여사장 양금숙.그녀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서툰 콩글리시는 그대로 유행어를 만들 정도다.'유어 미스테이크야!''그건 임파서블!'등.'아이 머스트 고 시집'이란 말은 시집 못간 미혼

여성이나 재혼을 맘먹고 있으면서도 속만 태우는 여성들의 심경을 대변해주는 말이 돼버린 느낌이다.

푼수끼도 넘치고 지적 허영에 가득차 스스로는 진지해 보이지만 주변 사람들을 웃기게 만드는 양금숙.그녀의 행동거지나 말투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하나의 사실을 망각한채 온전히 극에 빨려들기 일쑤다.

양금숙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그 연기자가 바로 이응경이란 사실 말이다.

그녀는 누구인가.89년 KBS드라마 '황금의 탑'으로 데뷔했을때 사람들의 반응이 지금도 기억난다.“얼굴은 완벽한데 어째 좀 연기가 서툴러서….”재목감이긴 한데 아직 제대로 다듬어지진 않았다는 지적이었다.

그녀 자신은 기억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런 평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당시엔'연기력이 달리던'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그런 아픔을 간직한 그녀가 지금 변화무쌍한 캐릭터인 양금숙역을 빈틈없이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후 8년여동안 그녀에게 무슨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눈썰미 좋고 캐스팅에 능한 운군일감독이 89년 풋내기인그녀를 처음 보고“언제 작품 한번 꼭 같이 하자”고 한 약속을 8년만인 이제야 지켰다는 사실에서 그녀의 변화를 읽을 수도

있다.그만큼 연기력이 성장했다는 얘기다.

“그땐 너무 서툴렀죠.여고시절 단지 선생님이 되고 싶던 꿈만 꿨는데.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뛰어들었으니….” 이런 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에서 어느새 여유마저 느껴진다.

사실 그녀는 출발부터 좀 독특하다.이화여고를 졸업하고 대학(인하전문대 항공운항과)에 진학한 그녀는 그 좋은 20세에 한남자(최갑수.42)를 열병앓듯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도 낳게 된다.안정된 가정을 꾸민 다음 연기세계에 뛰어든 것

이 여느 여자 연기자들과 크게 다른 점이다.

데뷔 초기부터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운건 연기력보다'분위기있는 연기자'란 점.그래서“대사를 줄이고 가만히 있는게 오히려 돋보인다”는 반갑잖은 얘기를 듣기도 했다.

그녀가 최초로 두각을 나타낸'그 여자'의 건주역 역시 청순한 이미지의 시골여대생으로 그녀의 분위기를 십분 살린 드라마였다.큰 반향을 일으킨 '질투''모래위의 욕망'등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를'분위기로 승부

하는 여자'로 인식했던 것이다.인기는 높았지만 진짜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어서 허전함이 그녀를 괴롭혔다.

이응경의 연기가 한단계 도약한 건 지난해 홍상수감독의 영화'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와서다.일상의 무기력함을 탈출하고자 하는 회사원 아내 보경의 일탈을 표정과 분위기는 물론 연기력에서 훌륭하게 소화해 낸 것.

“스스로도 가장 깊게 빠져들었던 작품이었죠.보경이란 캐릭터의 독특한 분위기나 심리상태는 지금도 연기에 도움을 줄 때가 많아요.”

지난해'애인'에서도 그녀의 연기는 절정을 예고하기에 충분했다.운오(유동근 분)와 여경(황신혜 분)의 불륜으로 소외받는 보통 주부 명애의 심리를 당혹감 어린 몸짓으로 그려낸 것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변신과 연기력에서 최고조에 이른 작품은'꿈의 궁전'이다.이미지 파괴를 무릅쓰면서 최초로 코믹터치의 드라마에 출연한 사실도 신선하다.이제 더이상 그녀를'분위기 하나로 때우려는 연기자'로 평가절하할 사람은 없다.

녹화가 없는 날이면 신사동 아파트에 누워 종일 천장을 보며 공상의 나래를 펴는 것도 다양한 심리상태에 자연스레 젖어들기 위한 수련 과정이다.

연기자의 자리를 떠나 평범한 엄마.아내로서의 그녀 모습도 이제 노련미를 더해간다.지난해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한 남편이 낙선하면서 겪은 마음고생도 컸지만 요즘엔 사춘기에 접어드는 딸 지혜(12)의 애교와 든든한 남편의 후견덕에“행복하

고 만족한다”는 얘기다.인터뷰를 가졌던 신사동 한 찻집을 나서는 세식구의 모습이 유난히 단란해 보이는 이유다.

중반을 넘고 있는'꿈의 궁전'외에도 5월이면 새영화'가족'(이명세 감독)이 촬영에 들어가 이응경은 더욱 분주해질 것같다.

〈장세정 기자〉

<사진설명>

봄을 맞는 이응경의 자태가 봄처녀를 연상케 한다. 〈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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