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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지 手製品 추억은 옛말 미국.일제 수입품 판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6면

딱지는 빳빳한 공책 겉장이 최고다.힘센 동팔이가 아무리 내려쳐도 꿈쩍 않던 기특한 그 딱지.팔이 빠지도록 쳐 동네 애들의 딱지를 싹쓸이한 다음 한아름 안고 집으로 향하는 기분이란….그 기분대로 고이고이 방 한쪽에 모셔놓을라 치면

어머니께서 꼭 한 말씀하신다.“그 더러운 것 좀 그만 갖고 와라.”그래도 좋았다.지릿한 냄새가 좋았고 베개대신 베고 자도 좋았다.

근데 요즘도 딱지치기하는 애들이 있나.물론 있다.'전통'이란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세월따라 변한 것은 있다.원래 공책이든 스케치북이든 겉장을 뜯어 접거나 빳빳한 종이가 궁하면 신문지를 겹쳐서라도 만들던 딱지 대신 요즘 아이들은 가게에서 파는 딱지로 놀이를 한다.수고로움을 싫어하는 아이들의 세태와 세련된

상품논리가 힘을 합쳐 유서 깊은'수제품 딱지'를 몰아낸 것이다.

이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딱지에 사용되는 캐릭터들이 왜색이나 미국의 저급 문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현재 초등학교 부근 문구점에 나와 있는 판매용딱지는'뻥뻥딱지''빠데르 딱지''마스크 왕뻥딱지'등 10여종이나 된다.이

딱지에는 일본이나 미국에서 제작된'지구용사 선가드''소년기사 라무''그레이트 다간''미 프로레슬링'등의 폭력적이고 기계적인 캐릭터들이 판을 치고 있다.언제부턴가 추억이 담긴 전래놀이 딱지치기가 미.일 캐릭터들의 대리전장(戰場)으로

변모하고 만 것이다.

게다가'또뽑기 찬스'를 주거나 심지어 미니게임기를 경품으로 내거는등 아이들에게 도박의 스릴(?)까지 강요한다.

이런 지경에 이른 딱지판에 한국고유의 캐릭터인'우리문화 왕딱지'가 외국용병'선가드'와'다간'에게 도전장을 던져 눈길을 끈다.아동출판물회사인 예림당이 지난해부터 기획해 만든 왕딱지는 캐릭터 디자이너 강우현씨가 디자인한'다울이''새울

이'가 씨름.고싸움.강강술래등을 즐기는 모습을 내세워 철권 다간.선가드과 힘겨운 한판을 겨룰 예정이다.격전일은 4월중순께.판매망도'적'들이 이용하는 문구점이 아닌 서점을 이용한다.딱지 10장에 2천5백원으로 가격경쟁력도 갖췄다.

일부에서는 염려한다.외국 캐릭터에 익숙한 어린이들이 쉽게 우리 것을 선택해 줄지.게다가 외래(外來)의 험한 캐릭터들과 싸우기엔 너무 온순하고 덜 화려해보이는 것도 약점으로 지적된다.하지만 예림당측은“장사를 할 생각보다 우리 캐릭터

살리기가 목적인 만큼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며 강한 의지를 표한다.잔인한 4월에 골목마다 치러질 한.미.일 캐릭터 대전(大戰)을 눈여겨 지켜볼 참이다. 〈신용호 기자〉

<사진설명>

수입만화 주인공들이 독점하던 딱지 캐릭터 시장에 도전장을 낸 순수 창작캐릭터 다울이와 새울이.복건쓴 도령들과 첨단장비로 무장한 전투로봇들의 딱지전쟁이 벌어질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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