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있는요리>계란말이 밥 - 마포구 성산동 이화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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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할머니!”

다섯살난 옆집 꼬마 아가씨는 주부 이화자(李花子.55.서울마포구성산동 성산선경아파트)씨가 문을 열기가 무섭게 제 집처럼 달려들며 외친다.

“상희 왔구나.자,오늘은 할머니가 상희 좋아하는 계란말이밥 만들어놨다.”

따라 들어온 상희 엄마는 진짜 할머니와 친손녀 사이같은 그 대화 속에 낄 자리조차 없다.4년째 이웃사촌으로 지내오는 동안 갓난 아기였던 상희는 정많은 李씨를 친할머니처럼 따르며 컸기 때문이다.상희뿐만 아니라 얼마전 이사간 약국집

아이도 시간만 나면“할머니가 보고싶다”고 전화를 해올만큼 그의 아이들 사랑은 동네에서 유명하다.

李씨의 넓고 포근한 품은 동네 꼬마들 몫만도 아니다.고등학교 교련교사였던 그는 4년전 학교를 그만두면서 홀트아동복지회에 나가 자원봉사를 새로 시작했다.1주일에 두번씩 서울합정동에 있는 임시보호소에서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우유를 먹여

주는 일을 도맡고 있어 그의 품을 거쳐가는 아이들의 수는 셀 수가 없다.어쩌다 한번 봉사를 못하게 되면“아이들이 눈에 밟혀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아이들을 좋아하는 천성'때문에 지난 95년엔 중앙일보 주최 제1회 자원봉사수기공모에

서 우수상을 타기도 했다.

李씨의 계란말이밥도 바로 그같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25년의 역사를 지닌 이 메뉴는 지금 불가리아에 유학 가 있는 큰 아들이 다섯살쯤이었을 때 편식습관을 고쳐주려고 개발한 것.아이가 잘 먹지 않는 야채와 고기등을 잘게 썰어 만든

주먹밥을 재료들이 잘 보이지 않게 노란 계란으로 말아 보았다.그랬더니 아이는 신기할 정도로 잘 먹었고,그 때부터 李씨는 아는 젊은 엄마들에게 항상 그 조리법을 가르쳐주곤 했다.모양이 예쁘고 식어도 맛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집에서 뷔

페식등을 할 때도 좋은 메뉴라고.어른들에겐 씹히는 맛이 나게 우엉등의 재료는 삶지 않고 사용하면 더욱 좋단다.냉장고의 짜투리 재료들을 다 이용할 수 있어 실용적인 측면도 있다고.

'할머니'李씨에겐 정작 친손자나 친손녀가 없다.결혼한 큰아들에게선 아직 아이소식이 없고 두살 터울의 딸은 미혼인 탓.하지만 李씨는 그 포근한'할머니 사랑'을 나눠주기에 바쁘다.동네와 합정동에 있는'손자 손녀들'이 오늘도 그의 품을

찾기 때문이다. 〈김정수 기자〉

계란말이밥 만드는 법

▶재료(5인분)=쌀3인분,검은쌀1큰술,감자(중간크기)2개,양파1개,당근1개,우엉70,햄 또는 쇠고기100,시금치3뿌리,표고버섯3개,통깨1큰술,소금1큰술,후춧가루 약간,식초2찻술,계란4개

▶조리법=①쌀은 씻어서 30분간 불려놓는다.②우엉은 삶고 말린 표고버섯은 불려서 감자.양파.당근.햄과 함께 모두 쌀알크기로 잘게 썰어놓는다(쇠고기를 사용할 땐 잘게 다진 것을 간장.참기름으로 간해 볶아 놓는다)

.③시금치도 살짝 데쳐서 잘게 썰어둔다.④쌀은 물 양을 보통 때보다 적게해 밥을 하다 끓을 때 ②를 넣고 뜸을 들인다.⑤밥이 다 되면 소금.후춧가루.식초.시금치를 넣고 골고루 섞는다.⑥⑤를 한입에 들어갈 만한

크기의 주먹밥으로 만든다.⑦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소금간해서 풀어놓은 계란을 1스푼씩 떠 놓는다.⑧계란이 채 익기 전에 주먹밥을 올려놓고 계란으로 말아 굴리면서 노릇노릇하게 지진다.⑨식성에 따라 케첩이나 간장소스와

함께 낸다.

<사진설명>

옆집 꼬마 상희에게 계란말이밥을 먹여주는 주부 이화자씨의 손길엔 친할머니같은 사랑이 담뿍 배어 있다. 〈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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