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볼거리.놀거리 모두 낙제점 - 국내 관광산업 실태와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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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외국 관광객을 많이 끌어들이는 방법은 간단하다.관광객들로 하여금 값싸고 편하게 자고,맛있게 먹고,다양한 볼거리.놀거리를 제공하면 된다.

살거리를 많이 제공하면 그들의 주머니도 털(?)수 있다.이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미국.일본같은 관광선진국은 물론 아시아의 경쟁국들에도 한참 뒤진다.

먼저 잠자리를 보자.외국 관광객들은 한국에서의 잠자리는'부족하고,불편하며,불결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관광객 만명당 객실수는 우리나라가 1백18실.이에 비해 미국은 6백83실,일본 6백65실,홍콩 3백68실,말레이시아 2백45실등이다.객실이 부족하다 보니 방 구하기가 힘들고 요금은 비싸질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대형 국제행사를 하려면 한바탕'호텔방 전쟁'을 치러야 한다.

유러스타트 통계에 따르면 서울에서의 하루 체재비(3백95달러.특급호텔 숙박과 1박3식 기준)는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비싸다.반면 시드니는 3백15달러,방콕은 3백달러 수준이다.

서비스.청결면에서도 특급호텔 외에는 수준이하다.관광객들에게는 값싸고 청결한 호텔이 많아야 하는데 특급호텔외에 소규모 호텔들이라는게 대부분'러브호텔'이다.낮에도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냄새가 난다.그나마 외국 관광객들은 받지도 않는다.

지난 2월6일 서울시내 모호텔(1급)에 묵은 미국인 관광객 프리드릭스(45)는“오전6시에 제공돼야 할 아침식사가 7시가 돼도 나오지 않아 하루 관광스케줄을 망쳐버렸다”며“돈은 비싸고 잠자리는 불결한데다 제대로 얻어 먹지도 못했다”

고 관광불편신고센터에 불만을 털어놓았다.

볼거리.놀거리도 신통치 않다.사계절이 뚜렷하다는 것이 장점이라곤 하나 사계절을 이용한 대표적 관광상품이 없다.

스키는 동남아 관광객들에게는 인기있는 계절상품이지만 별로 팔지 못하고 있다.스키장시설의 절대부족으로 슬로프는 콩나물 시루다.스키장까지 오가는 교통사정도 마찬가지.한국의 대표적 관광지인 제주도에 골프장이라곤 겨우 4개다.

외국 골프관광객의 수용은 커녕 국내 골프관광객 받기에도 벅차다.

관광상품도 너무 일차원적이다.자연경관만을 보여주면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데는 한계가 있다.자연경관.문화유산과 스포츠.문화이벤트가 결합된 관광문화상품을 개발,'체험관광'이 되도록 해야 한다.

하와이에서 제주관광을 온 아이크(25)는“이렇게 아름다운 섬에서 서핑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그저 둘러보다가 돌아가니 심심한 관광이 됐다”며 아쉬워 한다.

단체관광보다 개별관광이 늘고 있는 추세인데 이들을 위한 관광안내체계도 미흡하다.관광안내표지판과 관광안내소를 좀더 늘리고 영문.한자안내판을 많이 세워야 한다.

관광객들로 하여금 돈을 좀더 쓰도록 하려면 살거리도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기념품.토산품이 아직도 조잡하다.유명 관광지 기념품 판매소에 가면 아직 담뱃대.인형.연필.그림엽서등이 대부분이다.관광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먹거리와 나이트라이프도 중요한 관광외화벌이 수단이다.하지만 아직도 먹거리하면 불고기.삼계탕이고,나이트라이프하면 룸살롱.부채춤 공연이 고작이다.

지난달 23일 명동밤거리를 둘러보던 일본인 관광객 나카노 히로키(45) 일행 3명은 접근해온 한국인을 따라 술집에 들어갔다가 시키지도 않은 양주.안주 따위를 먹고는 1시간30분만에 1백14만5천원을 지불해야만 했다.서울야경이 아무

리 아름답다고 해도 건전한 밤의 여흥이 없다면 관광객들에게는 삭막할 따름이다.

움직이는 수단인 택시의 불친절도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지난달 12일 롯데쇼핑센터에서 타워호텔까지 택시를 탄 일본인관광객 히토미 다하라(29)는“난폭하게 차를 몰고 이리저리 우회해서 목적지까지 갔다”며“서울에서 택시타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관광산업은 호텔.요식업.운수산업.문화산업.스포츠산업등이 어우러진'종합예술같은 산업'이다.더이상 관광산업이 소비성 사치산업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돈도 벌고 삶의 질도 높일 수 있는 생산적인 산업이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관광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이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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