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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대한민국의 가치 지킬 진지들이 함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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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에서 돌아와 촛불시위를 다룬 TV뉴스를 보니 이상했다.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다른 이들도 실제로는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TV보도는 달랐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는 이들이) ‘말 없는 다수’라고 생각했다. 그 뒤 촛불시위 관련 발언을 했더니 주변에서 걱정을 하더라. 그렇다면 그들은 ‘겁 먹은 허수(虛數)’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모두 오해였다. ‘말 없는 다수’는 사라졌고 함락된 진지들만 남은 것이었다.”

소설가 이문열(60·사진)씨가 24일 오전 경기도청 공무원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한 말이다. 이씨가 언급한 ‘진지’는 이탈리아 공산당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헤게모니론’에서 말하는 개념이다. 종교·문화·교육 제도 등은 국가 권력의 외부에서 국가를 지키는 ‘진지’들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법적으로 국가 권력만 만들어졌다고 ‘건국’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와 목표에 대한 국민적 의식이 공유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경우 민주주의·자유주의나 시장경제에 대한 신념을 말한다.

이씨는 “왜 진지가 함락됐는가. 국민 형성이 되지 않아서다. 60년 전에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만들었으나 60년이 지나도록 국민은 만들지 못했다. 우리는 국민 형성 교육에 실패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1970~80년대의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반사작용 탓에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킬 ‘진지’들이 함락돼 갔다는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이 아름답고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는 포지티브한 교육은 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공산당 때려잡자는 식의 네거티브 교육만 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씨의 발언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외곽에서 보호하는 문화·예술·교육·지식인 사회 등의 ‘진지’들이 이미 함락됐다는 의견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강연 뒤 이씨는 “‘국민 형성 교육’이 과연 좋은 것이냐에 대해서 아직은 자신이 없다”며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독일·이탈리아·일본 같은 후발 국가들의 발전을 이끈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파시즘·황국신민 등으로 상징되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이날 강연 뒤 본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씨는 “이날 강연은 비공개의 소규모 모임으로 알고 갔던 것”이라며 “이날 밝힌 견해도 어떤 결론이나 확고한 주장을 내놓은 것이 아니고 현재 고민 중인 주제들”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한편 그는 “지난 10년간 내가 광분했다고 해도 좋을 만큼 보수 우파의 논리를 앞장서 대변했지만 과연 잘한 일이었나 싶다”며 “내가 어쩌면 시대의 ‘따귀 때리기’에 넘어간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과거 정치적·이념적 행보에 대한 반성을 의미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내가 왜 ‘반성하는 사람’이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자신의 논리가 좌우 논쟁의 과정에서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고 과열된 과정을 설명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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