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가계대출, 위기의 초시계가 째깍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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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누가 뭐라 해도 우리 경제에 잠복한 최대 뇌관은 676조원을 웃도는 가계대출의 부실 가능성이다. 지난달 가계대출 연체율이 0.66%라고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주택담보대출만 봐도 내년에 갚아야 할 돈이 올해의 두 배인 33조5000억원이나 된다. 2~3년 전 은행들의 대출경쟁 후유증이 거치기간 만료와 함께 부담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과연 가계들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가계대출은 거치기간이 끝나면 월 상환 부담액이 50% 넘게 늘어난다. 이에 비해 가계는 경기침체와 실업증가, 주식펀드와 집값 하락의 4중고(苦)에 짓눌려 있다. 채무 감당 능력이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과 정부는 기준금리를 내리고 처분조건부 주택담보대출의 상환기간을 2년으로 연장했다. 은행에는 만기 연장과 이자율 인하를 통한 채무재조정을 권고하는 등 선제적인 조치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은행들이 잘 따라주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은행들은 예대율을 낮추고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맞추기 위해 오히려 대출금 회수에 나서야 할 형편이다. 애당초 금융건전성 확보와 가계대출 부실 방지는 서로 상충되는 목표다. 하지만 고민만 하기에는 뇌관에 놓인 초시계가 자꾸 흘러가고 있다.

일부 지역의 집값은 최고치 대비 30~40%씩 떨어졌다. 담보주택을 경매에 넘겨도 대출금을 다 회수하지 못하는 불길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일본의 사례를 봐도 금융시장 혼란 이후 6~12개월의 시차를 두고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가 나서 미리 정교하게 가계대출의 안정성을 챙겨야 할 시점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가계대출 부실→부동산 가격 하락→금융위기의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우선 은행부터 설득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출 만기 연장과 금리인하를 통해 가계의 부담을 분산시키는 게 중요하다. 하루빨리 대담하게 경기를 부양해 가계의 소득을 최대한 유지시켜 줘야 한다. 주택금융공사가 주택담보대출의 일정 부분을 보증하는 규모도 5000억원에서 확 늘릴 필요가 있다. 금융위기가 온 뒤에야 가계대출 지원에 2000억 달러를 쏟아붓는 미국의 실패는 남의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