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도 고쳐 쓰는 물건이라고요!

중앙일보

입력

2008년 가을, 월드컵공원과 월드컵경기장에서는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00시장과 움직이는 00가게'가 열렸다. 이름을 따로 붙이지 않은 ‘00시장’과 ‘00가게’는 개개인의 기호와 관심을 교환하는 다양한 시장이자 공공예술 공간을 뜻한다. 자신들의 일반적이지 않은 삶의 방식과 취향을 상품으로 내놓은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만들어가는 결과물들이 사람들에게 소비되고 창작자의 생계가 유지되는 가게 자체를 공공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시장’이라는 형식과 ‘가게’라는 외형을 빌려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했다.
워크홀릭은 그중 가구디자이너 김종범(32) 씨를 만나보았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에 ‘이동이륜정비소’라는 콘셉트로 참가했다. 자전거 타는 즐거움과 정비하는 즐거움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게 바로 김종범 디자이너의 생각이다.


Wallholic(이하 WH)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이륜이동정비소’라는 콘셉트가 매우 특이하다. 어떻게 이런 걸 기획하게 됐나?
김종범(이하 김) :
기계와 대화하는 법을 알려주는 정비소다. 이동이륜정비소는 자전거를 고쳐주는 동시에 스스로 고칠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다. 최근 자전거가 얼마나 붐인가. 하지만 자전거는 결국 기계에 불과하다. 그 말은 곧 정비가 필요한 물건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최신 기술이 접목된 자전거도 정비돼 있지 않는다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만다. 막상 사람들은 자전거 정비에 돈을 쓰기를 꺼려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체인이 빠지고 브레이크가 삐걱대는 이유를 안다면 왜 내버려 두겠는가? 체인에 낀 먼지를 닦고 기름 치는 것만으로 수명이 배가 된다는 걸 안다면 왜 그냥 타겠는가? 이제 자전거를 도시의 새로운 대안문화로 인정한다면, 스스로 그 정비방법을 아는 것도 얼마나 즐거운 일이겠는가. 기계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여기를 좀 더 조여주세요”, “여기가 망가져 가고 있어요.” 이 말들을 우리는 소음이라 여기고 언짢아하며 넘기는 것이다. 정비의 영역은 마치 우리의 몸이 아플 때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것부터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다양한 층위가 있다. 가벼운 상처는 소독하고 연고를 발라 반창고를 붙이는 것으로도 충분히 치료가 된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걸 알리고 싶다.


WH 본업은 가구디자이너다. 그래서 자전거와 관련된 당신의 상상력이 낯설고도 재미있다.
김 :
사실 그건 장르에 따라 붙인 말일 뿐이다. 물론 가구라는 형태의 제품을 종종 만든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림을 그리는 일부터, 제품을 다루고 공간을 새롭게 꾸미는 일까지 제법 다양한 성격의 일을 한다. 그리고 본래부터 기계의 작동원리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그쪽에 대한 감수성을 디자인과 결합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기계인 자전거가 마침 양적으로는 성장하고 있는데 내용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자전거는 점점 다양해지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지만 그 도구를 다루는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이다. 특히 생활자전거로 분류되는 저가형의 자전거들은 사용하는 동안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고장 나면 쉽게 버려진다. 구매 이후 관리의 문화가 부재하다고 할 수 있다. 몇 만원에 산 자전거를 구매한 사람이 자전거를 고치는데 몇 만원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교환가치로만 따져서 싼 자전거는 돈을 들여 고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만연하다. 그런데 사실 자전거가 큰돈이 들어갈 정도로 망가진 것은 대부분 누구나 할 수 있는 생활정비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전거의 정비는 자전거의 내용적인 성장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래서 자전거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정비소를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그 목적에 부합하는 객관적인 모델 제시로 자전거로 이동하는 이동이륜정비소를 구상하게 됐다.

WH 이 일을 위해 전문적인 정비기술도 배웠다고 들었다.
김 :
프로젝트를 구상한 후 현장에서의 상황을 고려해 보니 마음에 걸리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 다양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정비능력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리고 그 정비를 배우는 방법 중 해당 기간에 가장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전문 교육기관에서 배우는 것이었다. 자전거수리판매점에서 일을 도우며 정비를 배우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그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또 체계적인 교육을 좀 받고 싶었다. 수강료가 꽤 비싸 결심하기 좀 어려웠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배워야할 내용이 너무 방대했다. 자전거의 세부가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관계는 참으로 복잡 미묘하더라. 작은 쇠구슬 하나, 기름 한 방울, 나사 반 바퀴의 차이가 몸으로 느껴지는 차이를 알았을 때는 짜릿한 앎의 즐거움이 있었다.

WH 이동이륜정비소를 한시적인 프로젝트로서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김 :
프로젝트가 끝날 때 쯤 시장에서 북한 말씨를 사용하는 탈북자 노인을 만났다. 아파트 단지에 버려진 자전거들이 고철로 넘어가는 걸 보고 그게 아까워 고철 값을 지불하고 직접 사두었다는 것이다. 정말 우연이지만, 이분이 한 일과 내가 하려는 작업이 다르지 않다. 직접 찾아가 만나보니 그렇게 수거한 자전거만 서른 대가 넘더라. 직접 기묘한 자전거를 발명하기까지 했다.
이 할아버지는 멀쩡하게 수리된 자전거를 동네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공동자전거로 나눠 주려고 했는데, 정작 주민들이 그걸 반대하고 나섰다. 멀쩡한 자전거도 버리는 와중에 남이 타던 자전거를 누가 관리하느냐는 것이다. 때문에 수거된 자전거는 올해 안에 치워져야 한다.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그냥 얼마짜리 물건 정도로 생각하는 것처럼 같아 적잖이 실망한 것 같았다.
나는 내년에 할아버지가 시작한 일을 보란 듯이 완성해 보고 싶다. 우선 정비할 장소를 찾고 자전거를 옮겨올 생각이다. 희망자를 모아 자전거 정비교육도 하고, 자전거 복원 작업도 가르쳐 보겠다. 가능하면 공용 자전거를 사용하게 될 사람들이 복원작업에 직업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싶다.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작업도 구상 중이다. 학교에 한 학기 수업으로 프로그램을 짜서 제공하려는 것이다. 예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일이 많겠지만, 꼭 필요한 모델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풀어가야지 어쩌겠나.

워크홀릭 담당기자 최경애 doongj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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