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읽기>KBS 용의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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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텔레비전 드라마 자체가 지극히 여성적 장르라는 점을 감안할 때 KBS-1TV 드라마'용의 눈물'은 남성적 테마를 주제로 하고 있다.지금까지 주축을 이루는 인물은 정도전과 이방원,이성계의 처와 방원의 처 민씨등인데 이들은 비극의 정

석대로 양쪽의 날카로운 대립을 통해 극적 긴장감을 유발한다.

극의 초반에선 이런 갈등이 비교적 팽팽했는데 날이 갈수록 늘어지는 감이 없지 않다.

또 나라를 다스리는 큰 일이 아녀자들 치마폭에서 좌우되는 것처럼 묘사하는 통속 사극의 상투성도 실은 마땅치 않다.평야가 좁아 큰 인물이 나기 힘들다는 이중환 선생 말마따나 우리나라 남자들의 경륜이 사실 그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인

지.

공교롭게도 드라마의 제목은 박종화선생의 원작'세종대왕'과는 달리'용'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어 요즘 세간에서 대선주자를 지칭하는 구룡이라는 말을 연상케도 한다.그래서인지 재상중심의 정도전식과 군주중심의 이방원식 정치를 각각 내각제와

대통령중심제로 대입시킨다든가,자주와 사대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대명(對明)외교를 오늘날의 대미(對美) 또는 대중(對中)외교등과 연관시키는 시청자들도 많다고 한다.

기실 그런 독법은 역사를 되돌아보는 쏠쏠한 재미중 하나라서,역사는 반드시 순환한다는 식의 단순논리는 믿지 않더라도 과거의 실패와 성공에 비춰 현실의 어려움을 헤쳐가고 미래를 지혜롭게 예측하면 좋은 일이다.

이 극의 중심주제인'권력'이란 아주 특별한 마성을 가지고 있어 나라가 어렵고 사회가 혼란할수록 그 독기를 더하게 마련이다.그 칼날은 자신의 정적뿐 아니라 피를 나눈 동지들의 목을 겨누기도 하고 힘없는 민중들을 위협하며 억압하기도

한다.

높은 자리로 올라가면 갈수록 권력의 칼날에 베인 사람들은 늘어나게 마련이라,마침내 정상에 섰을땐 밟고 올라간 사람들은 모두 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가장 경계해야 할 큰 적은 무능하고 욕심많은 자기 자신이어서 십중팔구 스스로의 무덤을 파기 쉽다.드라마에서도 정도전과 태조 이성계가 방원의 세몰이에 진 후 결국 권좌를 내놓게 되는 장으로 넘어갈 듯 싶어 기대가 된다

.

권력은 중독과 금단증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마약과 같고,저항할 수 없는 매력을 지녔다는 점에선 섹스와 닮았으며,생의 유한성에 대한 공포를 잊게 한다는 점에선 종교와 비슷하다.

이러한 권력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질 유일한 길은 끊임없는 자기 부정과 극기뿐.

드라마 '용의 눈물'도 기왕에 권력의 이런 속성을 건드리기 시작했으니 보다 신랄한 작가의식을 발휘해주길 바란다. 〈이나미 정신과 전문의〉

<사진설명>

KBS 대하드라마'용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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