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돕기 앞장 광한루 노점상들 "우리도 어렵게 살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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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 남원 광한루의 노점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이들은 ‘일심회’라는 계를 만들어 불우이웃을 돕고 있다. 양광삼 기자

"우리처럼 어려운 사람들은 서로 만나는 것만으로 힘이 된단다. 할머니 그리고 삼촌처럼 생각하고 언제든지 찾아 오거라."

남원시 도통동에 사는 소년소녀 가장 김정환(고 2).정은(중 3)남매 집에 최근 얼굴이 검게 그을은 50~70대 10여명이 찾았다.

이들은 남매에게 "꿈과 희망을 잃지 마라"고 격려하고 10만원이 든 봉투를 줬다.

올 들어 벌써 5번째 정환네 집을 찾은 이들은 '일심회'의 회원들.

'일심회'는 남원 광한루 주변서 관광객 등을 상대로 노점상을 하는 13명의 모임이다.

뺑소니 차에 남편을 잃고 커피.번데기를 팔아 아이들을 키우는 아주머니도 있고, 고리 등 열쇠 장식품을 팔아 부인 없이 혼자 아들을 가르치는 아저씨도 있다.

"하루벌이래야 1만~3만원으로, 겨우 입에 풀칠 할 정도입니다. 그나마 비.눈이 내리는 때는 공치기 일쑤라서 끼니를 굶는 날도 있죠."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를 못 쓰는 지체장애 2급으로, 손수레에서 테이프를 파는 고 회장 송규수(52)씨의 얘기다.

노점상들이 '일심회'를 만든 것은 10년 전.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끼리 단합도 하고 권익을 도모하자면서 모이기 시작해 매월 5000원씩 회비를 걷었다.

회비를 아끼기 위해 회식은 망년회 한 차례만 가졌고, 금쪽처럼 모은 돈은 현재 3백만원 가량이다.

이들은 자리고비처럼 돈을 아끼면서도 이웃을 돕는 데는 인색하지 않았다. 연말이면 불우이웃돕기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신문.방송사의 각종 성금 모으기에도 거의 빠지지 않았다.

지난해 말 망년회 자리에서 회원들은 "기금도 웬만큼 모였으니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발벗고 돕자"고 의견을 모았고, 시로부터 정환 남매를 추천받았다.

정환 남매는 7년 전 부모를 불의의 사고로 잃은 뒤 막노동을 하는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힘들게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일심회' 회원들은 동생인 중학생 정은이가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월 10만원씩을 대주기로 했고, 대학에 들어갈 경우엔 등록금 등 학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회장 송씨는 "정환이와 정은이가 용기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옆에서 잘 지켜보겠다"며 "올 연말부터는 홀로 사는 노인들을 돕는 일에 적극 나설 생각이다"이라고 밝혔다.

장대석 기자 <dsjang@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 <yks23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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