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청년실업, ‘전환제’로 풀어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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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어느덧 연말이다. 며칠 있으면 새 달력을 사용하게 될 터인데 내년의 경제전망이 워낙 어둡다 보니 새 달력 뜯기가 그리 즐겁지 않다. 다들 힘들겠지만 특히 일자리 걱정이 보통이 아니다. 경제성장률이 5% 남짓할 때도 일자리 창출이 여의치 않았는데 3%를 밑돌 것이라는 전망이 놀랍지 않은 참이라 있는 일자리나마 유지될지 걱정이다.

일자리는 무엇보다 일감이 있어야 생긴다. 또한 사람 쓰기가 쉬워야 생긴다. 여러 나라를 살펴보더라도 일감 있는 곳으로 사람이 모이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사람 쓰기 쉬운 나라가 일자리가 풍부함도 알 수 있다.

일자리에서 이 두 가지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따라서 정부가 일자리 정책을 펼 때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요즘처럼 불경기로 일감이 없는 상황에서 일감 늘리기는 공공근로사업 등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대책이 유효하다. 그러나 정부의 일감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보다 일반적인 정책의 초점은 사람 쓰기가 쉽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20대 청년 일자리가 2000년 이후 계속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특히 신규 채용이 줄고 있는데 그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일단 채용하고 나면 내보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산성이 불확실한 사람을 뽑느니 기존 인력으로 버티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또 새롭게 나타난 현상은 뽑더라도 훨씬 신중하게 뽑는다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며칠씩 숙식을 같이하며 관찰한 뒤 뽑는 경우가 많아졌다. 결국 나가는 길이 막히니 들어오는 길도 막힐 수밖에 없고 밖에는 구직자가 넘치게 된 것이다.

사람 쓰기가 쉽도록 하는 개선책은 입사와 퇴사를 좀 더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특히 입사 초기에 내보내기가 좀 더 자유롭도록 하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전환직’ 고용제도의 도입을 제안한다.

전환직이란 계약직으로 시작해 일정한 기간 내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고용 형태를 말한다. 예컨대 계약직으로 입사하지만 평가를 거쳐 능력이 인정되면 4년 이내에 정규직으로 신분이 바뀌는 것이다.

전환직은 노사 모두에게 득이 된다. 정규직이란 본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기업 내부 노동시장의 선택적인 수단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고용을 보장하는 정규직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 필요하다고 평가될 때 부여하는 것이다.

기업은 전환직으로 뽑아 일정 기간 동안 근로자를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회사에 필요한 인재인지 판단할 수 있다. 이는 기업에 인재활용의 유연성과 효율성을 높여준다. 한편 근로자는 입사 후 근무를 통해 회사가 자신에게 맞는 직장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근무 만족과 고용안정성이 동시에 높아진다.

만일 서로 궁합이 맞지 않는다면 입사 후 3, 4년 이내에 조기 퇴사하게 되므로 재취업이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전환직 고용이 일반화되면 졸업 후 몇 년간의 직업경험과 현장지식을 갖춘 청년층 노동시장이 활성화돼 청년실업 해소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전환직 고용제도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우선 계약직 사용기한을 2년으로 제한하고 있는 현행 법규가 개정돼야 한다. 계약직 사용기한을 폐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사용기한을 충분히 연장해야 한다. 최근 중국이 계약직 사용기한을 10년으로 연장한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전환직 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적절한 지원이 바람직하다. 현재의 청년인턴제처럼 전환직 고용에 대해 일정한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용증가는 국가적으로 근로소득세원 확보라는 혜택이 있는 만큼 전환직 채용을 하는 기업에 대해 채용 규모에 따라 법인세를 감면해주는 정책은 강력한 인센티브가 될 것이다.

남성일 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