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대인 巨商 아이젠버그 사망 - 원전도입등 한국 政財界 막후서 활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원전(原電)도입에서 베트남 억류 외교관 석방교섭까지 한국 정.재계 막후를 움직였고 이스라엘 외교의 숨은 공로자였던 유대인 거상(巨商) 사울 아이젠버그(76.사진)가 28일 베이징(北京)의 한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는 최근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에서 활발한 기업활동을 벌였고 특히 지난 92년 이스라엘.중국 수교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21년 독일 뮌헨에서 태어난 아이젠버그는 17세 때인 38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탈출,스

위스.프랑스.벨기에등을 전전하다 41년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시작했다.2차대전이 끝난 후 일본에 진주한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외국인 우대조치와 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사업을 확장,세계적인 사업가로 부상했으며 67년 이스라엘은 그가

외국사업에서 벌어들이는 돈에 대해선 세금을 면제한다는 내용의'아이젠버그 특별법'을 만들어 이스라엘로 불러들이기도 했다.

그는 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등 집권 군부세력에 장기영(張基榮).김성곤(金成坤)씨등을 통해 접근한 이후 외자(外資)도입 중개에 나서 동양시멘트.쌍용시멘트등과 비료공장.발전소등 기간산업 건립에 관여

했다.그는 70년대 캐나다로부터 도입한 월성 원자력 3호기 도입 커미션을 둘러싸고 물의를 빚기도 했다.또 75년 사이공이 월맹에 함락된 후 5년간 감옥살이를 한 이대용(李大鎔)공사등 주월한국대사관 공관원의 석방에도 막후 밀사로 활동

했다.중국의 경제개발계획에도 막후에서 깊숙이 간여했고 고(故)덩샤오핑(鄧小平)등 공산당 지도자와도 친분을 맺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위대한 사업가이자 이스라엘의 외교사에서 지대한 역할을 한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말처럼 아이젠버그는 세계사 뒷면에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났다. 〈염태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