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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조성민’을 위한 변명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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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고 최진실의 전 남편인 조성민. 한때 최고의 프로야구 스타였던 그는 최진실 사망 후 친권을 행사하려다 돈을 욕심내는 ‘나쁜 아버지’로 몰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친권포기선언을 했다. 그에게 진정 父情은 없는 것일까?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 굴곡을 돌아보며 ‘아버지 조성민’을 변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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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버스 유리창을 똑똑 두드렸다. 아버지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울음을 참고 있던 내가 문을 열자 풍양제과에서 나온 단팥빵 두 개가 올라왔다. 칡껍질 닮은 손이 바깥에서 잠시 흔들렸다.”

아이들에게 더 이상 상처 주기 싫어 친권 포기… “내 욕심만 찾았다면 진작 외국으로 떠났을 것”
심층진단 프로야구 스타 조성민의 인생 굴곡 & 잃어버린 父情

소설가 유용주가 그의 자전적 소설 <마린을 찾아서>에서 그린 아버지의 모습이다. 열네 살의 나이에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는 아들을 보내는 부정(父情)이 애틋하게 묘사돼 있다.

‘아버지’는 집안의 태산 같은 존재이며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이다. 살면서 이리저리 부딪혀 생채기가 날 때 찾아가 기대어 엉엉 울 수 있는 고향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세상의 수많은 아버지는 모정(母情)에 못지않은 부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속 깊은 울음으로 침묵할 뿐이다. 누구나 ‘좋은 아버지’로만 사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방영돼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종영된 SBS 주말 드라마 <조강지처클럽>을 보자.

이 드라마에서 한심한 역을 맡은 배우 한진희는 젊은 날 외도로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면서 자녀들로부터 멸시를 받았다. 늙고 병들어 조강지처를 찾아온 그는 딸의 결혼식장에서 자신을 평생 부정하던 딸의 손을 잡고 입장하며 하염없는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유용주의 소설에 나온 아버지도, <조강지처클럽>에 나온 아버지도 모두 우리 시대 아버지의 모습이다. 단 한 번의 실수로 가정을 등지고 자녀들로부터 버림받고 사는 그들도 인간일진대 왜 아버지로서의 정이 없겠는가? 고(故) 배우 최진실의 전 남편이자 한때 최고의 프로야구 스타로 이름을 날리던 조성민(36).

그에게 2008년은 아버지로서의 존재감을 가장 크게 느꼈던 한 해였을 것이다. 최진실 사후 남겨진 아이들에 대한 친권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조성민은 2004년 최진실과 이혼 당시 친권포기각서를 썼었다. 하지만 이 친권포기각서는 배우자가 사망하면 휴짓조각이 돼버린다. 현 민법에 따르면 조성민의 친권이 되살아나 자녀들에 대한 양육권 및 재산관리권 등에 대한 권한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조성민을 향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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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의 삼오제가 열린 2008년 10월6일 고 최진실 모친 정옥숙 씨가 조성민 앞에서 울고 있다.
민법 909조 3항에 따르면 단독친권자가 사망하면 다른 일방의 친권이 무조건적으로 부활한다. 새로운 친권자가 과거 아동 학대나 가정폭력 등의 문제가 있어도 친권은 바로 넘어가게 되며, 문제가 발생해도 사후에야 친권을 상실시킬 수 있다.

조성민은 최진실의 49제가 있기 전 친권문제가 대두하자 최진실의 모친 정옥숙 씨를 찾아가 “환희 엄마의 재산이 얼마인지 알아야겠다. 변호사를 통해 돈을 직접 관리하겠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민은 이 과정에서 정옥숙 씨가 추천한 변호사에게 찾아가 상의하게 됐고, 그 때의 상황이 녹음된 것이 언론에 다소 왜곡되게 노출되면서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게 됐다.

여론은 조성민에게 친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과, 생부로서 조성민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며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이후 ‘최진실법(사이버모욕죄법)’이 입법추진되는 한편에서 ‘한 부모 가정 자녀를 걱정하는 진실모임’ 등이 만들어지면서 조성민에 대한 여론의 시선은 더욱 따갑게 변해갔다.

덩달아 TV 프로그램은 일제히 최진실 49제에 맞춰 그녀 사망 이후 집중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친권논란을 방영하며 조성민의 설 자리를 점점 좁혀 갔다. 2008년 12월18일 방송된 MBC TV의 은 조성민의 친권논란에 불을 댕겼다. 정옥숙 씨는 이날 방송을 통해 친권논란 이후 최초로 억울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혼하고 나서 한 번도 아이들 보러 온 적도 없고 작은애가 보고 싶다고 전화했을 때도 피하고 만나주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러나. 당시 그 여자(현재 조성민 부인) 소송한 것에 대해 취하해주면 친권과 양육권을 영구적으로 포기하겠다고 했었다.”

1.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환희 보고 싶다. 보고 싶지만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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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민과 아이의 행복했던 한때.
조성민은 3년 전 친권포기각서를 쓴 이유에 대해 방송에서 이렇게 해명했다. “당시 아이들에 대해서는 엄마가 관리를 잘할 수 있고 어떠한 판단을 하는 데 있어서 나보다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동의한 것일 뿐이다.

‘내 자식이 아니다. 나는 아이들과 끝이다’라는 생각으로 포기한 것은 아니다. 재산에는 추호도 관심 없다. 아이들 엄마와 살 당시에도 재산이 얼마인지 몰랐다. 그저 이제라도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살고 싶을 뿐이다.”

정씨는 이에 대해 “조성민이 재산 있는 거 다 밝혀라. 얼마가 남았는지 투명하게 다 알아야 된다”며 “당장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지만 할머니에게 양보한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조성민의 주장을 반박했다.

“최진실과 이혼하기 전에도 아이 보고 싶어 찾아가”

조성민은 “이미 한번 아이들에게 나쁜 모습을 보였고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또 주고 싶지 않다”며 “재산에 대해 투명하게 안 해도 되고 유산관리 안 해도 좋다. 다만 내 바람은 큰 버팀목이었던 엄마가 사라진 아이들에게 아빠로서 의무를 할 수 있게만, 편하게 아이들을 볼 수 있게만 해주기를 바랄 뿐”이라는 심경을 토로했다.

조성민이 최진실의 49제를 지내기도 전에 최씨의 모친 정옥숙 씨를 찾아가 아이들의 친권과 재산권 문제를 거론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종의 기우 같은 거다. 환희엄마가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고 아이들 외가 쪽과 이런저런 문제들을 상의하다 유산이 알려진 것보다 많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계약불이행 등으로 변제해야 할 것도 있고, 아이들 앞으로 돌아갈 유산에 대한 상속세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런 제안을 하게 된 거다. 유산이 얼마인지, 앞으로 지불해야 할 빚과 상속세는 얼마인지 알아보자고 한 거다. 만약에 그게 채무로 남게 된다면 아이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여성조선> 2008년 12월호)

처음부터 단 한 푼의 재산도 탐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는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아이들 외가에서 최진실의 돈을 찾지 못하도록 통장을 막아놓은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아이들에게 불이익이 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아무 것도 모른 채 이런저런 서류에 도장을 찍어줄 수 없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조성민의 간곡한 해명에도 여론은 그를 아이들보다 돈을 밝히는 파렴치한으로 몰아세웠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진실의 멍든 얼굴, 외도, 그리고 최진실의 자살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에서 조성민은 원인제공을 한 가해자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최진실은 생전에 “아무리 친권을 포기했다지만 어떻게 아버지라는 사람이 단 한 번도 아이들을 찾아오지 않을 수 있느냐”며 조성민에 대해 억울하고 분한 심정을 드러냈었다. 그는 이미 수년 전부터 ‘나쁜 남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여론에 몰리던 조성민은 결국 2008년 12월8일 서울 서초아트홀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아이들에 대한 친권과 재산관리권, 양육권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자회견 전문 별도>

그는 “나는 유족 뜻에 따라 법원에 두 아이들에 대한 양육자를 변경하고 법률행위 대리권과 재산관리권을 사퇴하는 법적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며 “양육권·법률행위대리권·재산관리권 등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점을 밝힌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고 오로지 사랑만을 베풀어주는 아버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아버지로서 의무만 다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을 열기 직전 그는 측근 K씨를 만나 억울한 심정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상에 어느 아버지가 자기 아이들이 보고 싶지 않겠나. 애들 엄마와 이혼하기 직전에도 아이들이 보고 싶어 찾아간 적이 있는데 아이 엄마와 외가 쪽과 심하게 다퉈 험한 꼴만 보이고 왔다. 그날 이후 서로 만신창이가 되느니 오해와 미움이 사라진 뒤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독한 마음을 먹고 발길을 끊었다.”

그는 K씨를 통해 “아이들이 자라면서 양육비가 부족하거나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 생기면 내가 벌어 아이들을 책임지겠다는 각오도 하고 있다”는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조성민은 K씨에게 휴대전화에 저장한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사진을 열어보며 “내가 진짜 나쁜 놈이라면 그 돈 찾아 외국에 가서 살지, 왜 한국에서 욕을 먹으며 살고 있겠느냐”며 “나는 애들이 살고 있는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의 부정이 가면이 아니라는 증거는 또 있다. 그는 최진실이 사망하기 1년 전인 2007년 한 인터뷰를 통해 아이들을 보지 못하고 살 수밖에 없는 심정을 가식 없이 드러냈다.

“환희를 보지 못한 지 오래됐다. 찾아가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찾아가서 괜히 얼굴 보고 싸우는 것이 싫어서, 좋게 헤어진 것도 아니고 좋지 않게 헤어졌기 때문에 현재 감정도 좋은 것은 아니어서 부닥치는 게 싫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 내가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아버지에게 찾아왔을 때 떳떳하고 잘된 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나중에 아이들이 내가 하는 이야기를 이해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환희 보고 싶다. 보고 싶지만 참고 있는 거다. 남들은 자식 한번 안 찾아간 아버지라고 욕할지 몰라도 내 가슴은 아프고 걱정도 많이 된다. 요즘에는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자기 인생이다. 잘 자라게끔 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다. 그렇다고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발적으로 커가게끔 키우고 싶다. 내가 힘든 생활을 하다 보면 자식들이 보고 배우는 게 뭐가 있겠나.” (2007년 <스포츠 2.0> 인터뷰에서)

<계속>

박미숙 기자 splanet88@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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