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대출 이래서 어렵다-행원몸사리기.신용대출 기피.배임죄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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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누구는 뭐 대출해주기 싫어서 않는줄 아십니까.”

시중 은행장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위해 간담회를 갖고 재정경제원 장관이 금융기관장들을 모아놓고 벤처기업등에 대한 특별 지원을 당부한 것에 대해 한 은행의 일선 직원이 던지는 볼멘 소리다.그는 우리나라 금융계의 최고 책임자들이 내놓은

여러 처방이'다 좋은 얘기지만 쓸 말은 없다'고 했다.돈이 안풀려 흑자 도산하는 기업도 딱하지만 사정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금융기관 직원들도 돈을 풀기 힘든 여러가지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전결권을 밑에 넘긴다고 대출이 늘지 않는다=“대출 권한을 일선 점포로 넘겨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강화하도록 지시했다.”

지난 24일 은행장 간담회에서 한일.국민등 일부 은행장들이 밝힌 여신 지원 대책이다.그러나 실무자들은 전결권을 하부로 이양한다고 중소기업 자금지원이 무조건 늘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부실에 대한 책임을 인사상 불이익등의 형식으로 개인에게 묻는한 대출 직원들의'몸사리기'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최근 기업은행의 직원이 청부폭력배를 동원,채무자를 위협한 것도 과거 발생한 부실채권으로 인해 업무추진역으로 발령나자

이를 해결하려다 생긴 사건이라는 것이다.

◇신용분석 능력 미흡=이동호(李同浩)은행연합회장은 간담회에서“중소기업의 담보력은 취약하므로 선진금융기법을 도입,신용대출로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그러나 신용대출의 기본이 되는 신용분석 능력은 하루 아침에 개선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수십년동안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주는 식의 대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한보철강 부실대출이 발생한 원인중 하나는 사업성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국내 은행이 전무했기 때문(외환은행의 한 임원)이라는 고백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비제도금융권 여신 파악 불가능=종합금융회사등 2금융권에서는 최근들어 파이낸스.할부금융등 이른바 3금융권이라 불리는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는 기업에 추가 여신을 줄이고 있다.1,2금융권과의 정보교류가 전혀 없어 기업재무구조가 어떤

상태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

반면 파이낸스등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기업은 크게 늘고 있다.최근 2금융권의 긴급자금 지원으로 위기를 넘긴 K산업의 경우 3금융권의 여신이 7백억원에 달했다(A종금 자금부 대리).

이들 파이낸스등은 루머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어음을 쉽게 돌리기 때문에 3금융권 여신이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대출을 하지 않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최선의 길”이라는 얘기다.동양종금 조왕하(趙王夏)대표이사는“3금융권 여신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공포분위기=한보에 대한 검찰 재수사로 은행장의 업무상배임죄가 거론되는 상황하에서 과감히 대출하라는 것은 정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보 후유증이 완전히 가라 앉아야 얼어붙은 대출창구가 녹지 않겠느냐”는 것이 한 시중 은행관계자의 반문이다. <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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