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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헌법개정은 누가 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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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 헌법은 해방후 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국민의 신뢰속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그런 가운데-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다시금 헌법개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한동안 대통령의 임기및 중임(重任)제한을 재검토하자는 주장이 나오

더니 최근에는 정부형태를 의원내각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비록 헌법이 국가질서의 근간을 정하는 최고법으로서 최대한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하지만 헌법 또한 다른 모든 법규범과 마찬가지로 현실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규정내용을 바꿔야 할 경우가 생기게 된다.따라서 절박한 필요가 있을 경우 헌법을 개정하는 것은 헌법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권력구조에 관한 헌법개정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던지게 되는 것은 우리가 경험한 헌법개정의 대부분이 국가권력 장악과 유지를 위해,즉 집권의 정당화 내지 집권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오용돼 왔다는 헌정사의 교훈 때문이다.

현재 의원내각제 개헌론이 정치권에서 확산되는 것도 마찬가지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현재상황에서 정부형태의 변경이 왜 그렇게 절박한 것인지에 대한 설득력있는 해명은 아직 없으며,특히 외국의 예를 들면서 의원내각제를 통한 민주성 강화와

권력분산의 제도화를 주장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은폐하는 것이라 의심해 볼 수 있다.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장단점은 단순히 제도 자체의 일반론적 장단점에 대한 추상적 평가로 결론내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정치의식 수

준과 정치인들의 역량등 현실적 전제조건들이 얼마나 갖춰져 있느냐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의 개헌논의는 헌법개정을 도대체 누가 하는가에 대한 반성

없이 당리당략에 따라 주도돼온 느낌마저 주고 있다.우리가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헌법의 주체는 주권자인 국민이며,현행 헌법상

헌법개정의 최종적 결정권자도 국

민이다.비록 헌법개정을 위해 국회의원 재적과반수 또는 대통령에 의한

발의와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의 찬성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최종적 결정권은 국민에게 있으며,국회와 대통령의 관여는 오히려

국민의사를 수렴하는 과정으로 이해돼

야 옳을 것이다.국회의원이나 대통령에게 헌법개정발의권이 부여된 것은

그들이 국민의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의사를 수렴하는 가운데서도 어려움은 있다.국민들

사이에서도 서로 대립되는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며,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한쪽이 다수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의견대립이 팽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이른바 가중다수)을 얻도록 한 헌법규정은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원할 경우에만 비로소 헌법개정이 고려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정치적 세력들간의 담합에 의해 국민의사를

무시한채 헌법개정이 추진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그러나 과거

국민을 호도하는 헌법개정이 관철됐던 경험이 오늘날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이며,성숙한 국민들의 투표를 통한

최종적 판단이 그러한 담합을 통제하는 안전장치로 기능할

것이다.그리고 만일 국민의사에 반하는 무리한 헌법개정을 추진하다가

그것이 국민투표에 의해 좌절된다면 그러한 헌법개정을 추진 또는 이에

동조했던 정치적 세력에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다.

헌법개정논의 자체를 무조건 터부시할 필요는 없다.그러나

헌법개정논의는 사안의 비중을 고려한 신중하고 합리적인 검토에

기초해야 한다.그런 가운데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수렴한

헌법개정논의는 설사 그것이 관철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름대

로 의미를 갖는다.반면 국민의 의사를 왜곡시키면서 특정집단의 정치적

이해관계만을 관철시키기 위한 헌법개정은 더이상 방관돼서는

안된다.오직 정상적인 헌법개정,민주적인 내용과 절차에 따른

헌법개정만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장영수〈고려대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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