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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100년 ‘우마미’ 어엿한 제 5의 맛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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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호 15면

딸기맛·바닐라맛·양파맛·고등어맛·할머니 손맛…

세상의 맛은 세포 수만큼이나 무궁무진할 것 같다. 그러나 기본적인 맛은 단맛(sweet)·짠맛(salty)·신맛(sour)·쓴맛(bitter) 등 네 개뿐이며, 이들 넷의 조합에 따라 온갖 맛이 파생된다는 것이 서양의 4원미(네 가지 맛) 이론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 이래로 수천 년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4원미설은 정확하게 100년 전(1908년) 강력한 도전에 직면한다.
 
해초 수프에서 탄생
도전자는 일본 도쿄제국대 이케다 기쿠나이 교수였다. 그는 해초 수프에서 ‘기막힌’ 맛을 발견하고 이를 ‘우마미(旨味)’라고 불렀다. 그는 이것이 기본 4원미를 어떤 방식으로 섞어도 얻을 수 없는 ‘제5의 맛’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아지노모토사는 다음해 ‘MSG(조미료)’라는 이름을 붙여 우마미를 상품화했다. 그 후 1세기 동안 우마미는 우리의 입맛을 지배해 왔지만 두 차례의 큰 시련을 겪었다.

먼저 서양 학자들은 우마미의 실체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했다. 우마미를 인정하기 위해선 4원미설을 지지했던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까지 부정해야 했던 만큼 반대가 완강했다. 때로는 “동양 이론이 별수 있겠어”라면서 무시 작전을 폈다. 이 논쟁은 2000년 미국 마이애미대 나루파 샤우드하리 교수팀이 혀에서 우마미의 맛을 감지하는 수용체(receptor)를 발견하면서 끝났다. 이로써 우마미가 국제용어로 공식 인정됐다.

미각은 액체에 녹은 화학물질의 맛으로 혀가 담당한다. 그러나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배운 내용과 달리 혀의 부위별로 특정한 맛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과학전문지 ‘네이처’(2006년 8월 24일자)에 맛을 감지하는 수용체가 혀의 특정 부위에 몰려 있는 것이 아니라 혀 전체에 퍼져 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두 번째 도전은 우마미의 대표 격인 MSG가 중국 음식점 증후군(Chinese restaurant syndrome)을 유발한다는 문제 제기였다. 이 논쟁은 30년간 계속됐다. 중국계 미국인 의사가 68년 미국의 권위 있는 의학 전문지인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MSG를 많이 사용하는 중국 음식점에 다녀오면 뒷목이 뻐근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몸이 쇠약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이 발단이었다. 그 후 유해성을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95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MSG를 대다수 소비자에게 위험을 일으키지 않는 물질로 분류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식량농업기구(FAO)의 공식 입장도 FDA와 비슷했다. 그러나 아직도 불씨가 남아 있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MSG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마미 수용체를 찾아낸 샤우드하리 교수는 9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우마미 발견 100주년 기념식’에서 “MSG가 고농도로 존재한다면 맛도 이상하고 건강에도 좋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강대 이덕환(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는 “MSG가 인체에 해롭다는 확실한 과학적 증거는 없지만 MSG를 마구 먹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며 “지나치면 무엇이든 문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MSG를 너무 많이 섭취하면 비만을 야기하고 망막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연구논문이 나왔다.
 
태아가 최초로 맛보는 맛
단맛은 설탕, 짠맛은 미네랄(나트륨·칼륨 등), 쓴맛과 신맛은 독성물질의 존재를 알아내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우마미를 느낀다면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우마미는 딱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들다. 감칠맛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지만 용어가 통일된 것은 아니다. 달착지근한 맛, 구수한 맛, 부드러운 맛, 입 안이 편안한 맛, 고기 육즙 맛, 고기국물 맛, 표고버섯 맛, 멸치국물 맛, 다시마 맛 등 다양하다. 중국인은 선미(鮮味)라고 한다. 화학적으로 우마미는 20가지 아미노산 중 하나인 글루탐산 맛이다. 글루탐산·이노신산·구아닐산이 적절히 섞인 맛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된장국·간장·미소·조미료의 맛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서양인은 세이버리(savory)한 맛으로 느낀다.

원광대 식품영양학과 이영은 교수는 “서양인은 익숙하지 않은 맛인 우마미를 대부분 싫어한다”며 “우리에게 맛있는 새우깡이 서양인에게 인기 없는 것은 MSG가 들어 있어서”라고 말했다. 우마미의 실체인 글루탐산을 발견한 독일 학자 리트하우젠은 “맛이 불쾌하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서양에서도 최근 우마미에 높은 점수를 주는 주방장이 늘고 있다. 우마미의 핵심 성분인 글루탐산이 우유보다 모유에 10배나 더 많이 들어 있으며 이는 태아가 가장 처음 맛보는 맛이라는 이유에서다.
 
제6의 맛 ‘칼슘 맛’ 등장
최근엔 미국 연구진이 ‘제6의 맛’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혀에서 칼슘 맛을 느끼는 수용체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칼슘 맛을 “쓴맛이라고 할 수도 있고 신맛이 나기도 한다”고 다소 모호하게 묘사했다. 아직 공인되지 않았다.

고추·마늘 등의 매운맛은 여섯 번째 맛에 포함되지 않는다. 매운맛은 미각세포가 아니라 통각세포가 감지한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인도 ‘핫(hot)’하다고 표현한다.
오산대 식품조리과 배영희 교수는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의 일종”이며 “장기간 반복된 학습을 통해 혀가 후끈 달아오르고 조여 드는 듯한 느낌을 매운맛으로 감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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