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 막말만 해도 발언권 박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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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에선 18일 한국 국회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폭력 사태를 볼 수가 없다. 국회법 등으로 엄격하게 규제하고, 위반할 경우 최대 의원 제명까지 하는 등 철저하게 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일수록 법을 더 잘 지켜야 한다는 문화도 정착돼 있다.

◆미국=남북전쟁 직전인 1850년대 남부의 노예제 찬성 의원이 북부의 노예제 반대 의원에게 폭력을 휘둘러 중상을 입힌 이래 150여 년 동안 미 의회에서 폭력사태는 한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의원의 품위에 벗어나는 행동은 엄벌해야 한다는 의회의 확고한 의지 때문이었다. 한국처럼 의원들이 단상을 점령하거나 명패를 집어던지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의원이 이런 행동을 하면 폭력사범으로 간주돼 윤리위원회에 회부된다. 그 결과 남은 회기 중 의사당 출입을 거부당하거나 심할 경우 의원직을 박탈당한다. 의장은 비상상황이라고 판단하면 의사당 내에 배치된 경찰을 동원해 언제든지 의원들의 퇴장을 요구할 수 있다.

야당이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를 할 때도 국회법을 엄수해야 하며, 위반하는 의원은 심할 경우 제적된다. 필리버스터를 하는 의원은 화장실 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연단을 떠나는 순간 발언을 끝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의원들은 미리 사우나에서 몸의 수분을 빼는 등 준비를 단단히 하고 필리버스터에 들어간다.

의원의 발언도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의원이 의회에서 연설하면서 상대 당의 특정 의원을 공격하거나 점잖지 못한 용어를 쓰면 발언대 앞에 앉은 상대 당의 당번 의원이 즉각 발언을 중지시키고 사과와 의사록 삭제를 요구한다. 그러면 의장석 주변에 대기 중인 ‘국회법 전문가(Parliamentarian)’가 시비를 가려준다. 그럼에도 의원이 언성을 높이면 경비원에 의해 끌려나가고 심할 경우 수개월간 의회 내 발언권을 박탈당하는 중징계를 받는다. 이 사실이 지역구에 알려지면 재선에도 상당한 지장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여당 의원들이 일방적으로 법안을 강행 처리하려 들 경우 야당 의원들이 항의하거나 가벼운 몸싸움이 벌어지기는 하지만 도를 넘어선 과격행위는 없다. 의원들이 국회법과 중의원 규칙을 비교적 잘 지키기 때문이다. 총 47개 조항인 중의원 규칙은 ▶다른 의원의 연설을 방해해선 안 된다 ▶의장 단상에 함부로 올라가서는 안 된다 ▶국회 안에서는 모자와 외투·목도리·지팡이 등을 휴대해선 안 된다 등 아주 구체적이다. 국회법에서는 국회의원의 품위를 손상시켰을 경우 국회의장 경고, 공개 사과, 등원 정지, 의원 제명 등 4단계 징계조항을 두고 있다. 1988년부터 현재까지 이런 징계를 받은 사례는 3건이 있다. 2000년 마쓰나미 겐시로(松浪健四<90CE>) 의원은 의사당에서 연설하던 도중 자신에게 야유를 보낸 야당 의원을 향해 컵에 든 물을 퍼부어 25일간 등원 정지 처분을 받았다.

◆유럽=프랑스 야당 의원들이 반대 표시를 할 수 있는 가장 ‘과격한’ 방법은 수정안을 무더기로 제출해 의사진행을 방해하거나, 본회의장에서 야유를 보내고 집단 퇴장하는 정도다. 프랑스의 한 언론인은 “프랑스 의회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진 기억은 없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해당 의원은 다시는 하원에 출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고든 브라운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부가세 감축안을 내놓자 야당 의원들은 의회에 출석한 브라운 총리에게 “선거용 선심 정치이며 난센스”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모두 의석에 앉은 채 박수를 치고 웃으면서 야유를 보내는 정도였다. 도쿄·파리=박소영·전진배 특파원

서울=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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