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혁 개방 30년] ③ ‘무대 뒤 조연’ 농민·노동자 새 시대의 주역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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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 야오수광(姚署光·29)은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 출신의 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 즉 농민공(農民工)이다. 스무 살에 결혼한 그는 지난해 6월 아내와 아들(9)을 농사 짓는 부모 집에 맡기고 무작정 베이징으로 상경했다. 1년 내내 일을 해도 한 달에 300위안(약 6만원)을 벌기 어려운 농사일이 싫었기 때문이다. 함께 상경한 고향 친구들은 막노동판을 택했고, 야오는 발 마사지 체인점에서 임시직으로 취업했다. 요즘 하루 10시간 이상 힘들게 일해 버는 돈은 약 50위안(약 1만원). 세계 금융 위기가 터지기 전에는 하루 100위안이었는데 그마저 반 토막 났다. 그래도 야오는 하루빨리 돈을 벌어 가족을 베이징으로 불러 함께 오순도순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  

#2. 개혁·개방의 발상지인 안후이(安徽)성 펑양(鳳陽)현 샤오강(小崗)촌 농민 옌리쉐(嚴立學·68)에게 요즘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30년 전 그는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주변 농민 17명과 함께 정부가 금지한 농가생산책임제를 시작했다. 거주와 식사 등 생활 모두를 집단적으로 처리하는 사회주의식 인민공사의 낙후한 집단생산 방식을 버리고 자기 땅을 직접 경작하는 자본주의적 영농 방식이었다. 그를 비롯한 농민들의 목숨을 건 실험은 이듬해 풍작으로 이어졌고 중국 정부가 농가 생산책임제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30년 전 30대 후반의 나이에 목숨을 건 실험을 감행했던 그였지만 지금 후진타오(胡錦濤) 정부가 농민의 토지 경작권을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한 새로운 농촌 개혁 실험이 반갑지만은 않다. 옌은 “언뜻 보기에는 농민 소득을 크게 증대시켜 줄 것으로 보이지만 자칫하면 농민이 마지막으로 의지할 대상인 토지를 잃을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세계 금융위기를 맞아 중국의 농민과 노동자들이 잔뜩 위축돼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그랬듯이 이들은 주저앉지 않고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베이징 근교 농촌인 핑구(平谷)현 다싱좡(大興莊)진 량좡쯔(良莊子)촌이다. 핑구현은 베이징에서 가장 낙후한 농촌이다. 량좡쯔촌 농민들은 임야 2만 무(1무=666㎡)의 토지 사용권 경매를 추진하고 있다. 현지 농민들은 임야가 개발되면 농민의 소득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의 공업지대에서는 수출이 급감하면서 공장이 줄줄이 문을 닫자 춘절(중국의 설)을 4개월가량 앞둔 10월에 농민공의 조기 귀향 행렬이 시작됐다. 그러나 여전히 절대 다수의 노동자들이 도시에 남아 부자의 꿈을 키우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1억3000만 명의 외지 노동자 중 약 6%인 780만 명만 조기 귀향했다”고 보도했다. 감원을 뜻하는 ‘차이위안(裁員)’이란 말이 유행어가 된 사무직 근로자들도 생존을 위한 실력 키우기에 한창이다. 각종 자격증을 따기 위한 붐이 일고 있다. 베이징의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중견 간부 추이(崔·38·여)는 “이참에 경영학 석사 학위를 따겠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도 각종 지원책을 제시하며 이런 농민과 노동자를 적극 독려하고 있다. 후 주석은 18일 “창당 100주년(2021년)이 될 때 샤오캉(小康: 의식이 풍족한 상태) 사회를 실현하고, 건국 100주년(2049년)이 될 때 부강하고 민주적인 현대화 국가를 실현하자”고 비전을 제시했다. 

‘중국의 기적’은 덩샤오핑의 탁월한 리더십과 이를 실천한 기업가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현장에서 묵묵히 일한 농민과 노동자의 피와 땀의 결정체라고도 볼 수 있다.

샤오강촌(안후이성)·선전·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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