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특혜 확 줄인 국회를 보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5월 30일자로 17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시작된다. 새로이 국민의 대표가 된 당선자들은 지난 총선 과정에서 입을 모아 깨끗하고 효율적인 정치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되면 100가지가 달라진다" "국회의원을 해보고 나면 다른 직업을 못 갖는다" 등 여의도 근처를 떠도는 풍문이 들려온다.

먼저 '방탄국회' '저격수 의원' 등의 단어를 만들어 내기도 한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이 누리는 대표적인 특권의 하나다. 이 권한의 남용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비판이 제기됐고, 각 정당이 이 특권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법개정을 한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 "의원 되면 100가지가 달라져"

그런데 국회의원에게는 이 밖에도 각종 특혜가 부여된다. 먼저 국회의원은 자신이 받는 1억원 정도의 연봉 외에 4급에서 9급에 이르는 총 6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사무실 운영비.차량 유지비.유류비 등을 지원받음은 물론 국유철도.선박.항공 등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국회에는 의원 전용 출입문과 국회의원 전용 승강기가 존재하고, 공항엔 국회의원을 위한 의전주차장과 귀빈실이 있으며, 외국 출장시에는 장관에 준하는 일등석을 제공한다.

한편 국회의원은 감사 기간에 후원회를 열어 피감기관에서 거액의 후원금을 받을 수 있고, 임기 중에 자신의 변호사.공인회계사.세무사 등의 자격을 활용해 영리활동을 할 수 있으며, 자신이 소속된 상임위나 특위의 직무와 관련된 기업체 또는 단체의 임직원을 겸직할 수도 있다. 국회의원을 그만둔 이후에도 특혜가 기다리고 있다. 단 하루라도 국회의원이었던 사람은 65세 이후부터 '헌정회'가 지급하는 '연로회원 지원금' 명목으로 월 100만원이 지급된다.

국민의 대표자로서 의정활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편의는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이론이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입법, 예결산 심의, 국정 감사 등의 고유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인적.물적 지원은 지금보다 강화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용 출입문과 승강기가 꼭 필요한 것인지, 국민의 대표자가 특정사건 당사자의 이익을 대변하며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자신이 감시.통제해야 할 대상인 법인체의 임직원이 되는 것은 속보이는 짓이 아닌지, 재임 중 연금을 적립하지 않으면서도 퇴임 뒤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연금 성격의 돈을 받는 것이 형평에 맞는지 등은 의문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이상과 같은 특혜가 주어지는 만큼 국회의 생산성이 높은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크다. 얼마 전 시민단체인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제출한 '16대 국회 생산성 보고서'에 따르면 16대 국회의원 한명이 4년간 사용한 세금은 16억3328만원이고, 활동시간은 평균 1216시간(1일 8시간 기준시 152일)이었다. 국회의원 한명이 시간당 무려 134만원의 세금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의정활동의 생산성에 대한 평가는 매우 낮은 편이다. 국회의원으로서 단 한건의 법안도 발의하지 않은 사람이 있기도 하다.

*** 의원 한 명이 4년간 16억원 써

선거철만 되면 후보자들은 국민을 위한 '머슴'이 되겠다면서 표를 호소한다. 그러나 투표가 끝나면 당선자들은 국민의 '상전'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 17대 국회의원 299명 중 187명이 초선이다. 다른 사람들은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초선의원들은 출마를 결심하던 시기의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 시작은 자신들이 곧 누릴 특혜 중 과도하고 시대착오적인 것들을 스스로 없애는 데 있다.

17대 국회에서는 누가, 왜 자신에게 특혜를 줬는가를 항상 되씹는 국회의원을 더 많이 보고 싶다. 붉은 카펫이 깔린 전용시설과 검은색 대형 승용차로 상징되는 권위와 특권의식을 벗어던지고서 의정활동에 열과 성을 다하는 국회의원을 많이 보고 싶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는 '공'의 이름 아래 '사'를 추구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조 국 서울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