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현철 테이프와 정보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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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현철(金賢哲)씨 국정개입 의혹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던 비디오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정보의 생산과 유출.획득.이용을 둘러싼 윤리적 쟁점(爭點)이 파생하고 있다.이것은 92년 대선 막바지에 불거져나온 부산 초원복집 사건을 연상시킨다

.법무장관을 지낸 인사가 지역 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을 한 것이 녹음돼 공개됐던 것이다.이 사건의 파장을 피해가려는듯 곧 이어 불법 도청과 녹음 문제가 일각에서 제기됐다.

그런 이유로 우리의 심정은 개운치 않지만 정보윤리의 중요성을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다.검찰에 대한 국민의 솟구치는 불신과 환멸도 따지고 보면 검찰이 국민주권의 관점에서 정보를 공정하게 다루기보다 집권층에 영합하는 자세로 정보를

조제하고 활용하기 때문이다.

公益이냐 프라이버시냐

지난 7년간 시민운동단체로서 신뢰와 업적을 쌓았던 경실련이 최근 위기를 맞고 있는 것도 인권과 정의에 관련된 확고한 정보윤리가 정립되지 못한데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외형적 성장과 시장모델에 따른 고객 끌기에 집착한 나머지 운

동단체로서의 투명성과 윤리적 무장이 다소 미흡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문제의 비디오 테이프는 원래 진료 목적이나 의료소송 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만큼 그 목적으로만 사용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그러나 국민 다수가 이 정보에 관심이 있고 이 정보의 공개가 공익의 신장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면

공개가 윤리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경실련이 정직하고 결연했다면 좋았을 것이다.설사 의문스러운 방식으로 취득한 정보라 하더라도 공익의 관점에서 이를 신속히 공개하고 자신의 단견과 과오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 자유주의 전통이 너무도 취약한 우리에게

프라이버시의 보호는 귀중한 의미를 갖는다.정보를 파는 회사들이

고객의 은행계좌며

병원기록.백화점구매.부동산거래.잡지구독.비디오대여.세금기록.전화통

화.케이블 채널.여가와 취미

.가족관계 등에 관한 정보를 마구잡이로 상품화한다고 가정해 보자.그

결과는 가위'정보 강간'(data rape)과 같은 것으로 다가올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정보는 공익의 관점에서 공개하고 어떤 정보는

프라이버시의 관점에서 사적인 것으로 보호돼야 하는가 하는 쟁점이

제기된다.해답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정보통신 기밀법과 함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보듯이

많은 법적.윤리적 모호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정보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정보수집 과정의 사생활 침해,상업 목적의 개인 정보 유출,편향된

시각에 개인 정보를 삽입시킴으로써 생기는 명예훼손이나 중상.비방

등은 마땅히 피해야 할 일이다.

법적.윤리적 모호성

미국의 사생활보호법이 규정하듯이 정보회사가 개인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경우 반드시 당사자의 사전허가를 받도록 의무화할 필요도 있다.

문제의 핵심은 공개했을 경우 파문이 예상되는 당혹스러운

공인(公人)의 개인정보를 어느 정도까지 노출시킬 수 있는가에 있다.YTN

사장 인사개입을 생생하게 전한 김현철씨 비디오 테이프 공개도 이

범주에 속한다.이에 관한한 우리는 공

개를 원칙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사생활의 자유가 비리의혹의

보호막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우리는 정보의 정확성을 기하고 예상되는 부작용을

줄이며 정보 획득방식까지 공개함으로써 투명성과 함께 피의자의

인권까지 존중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한상진〈서울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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