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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미의 열린 마음, 열린 종교] 2. 정교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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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 주한 러시아 일등서기관인 막심 볼코프는 오늘도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사진= 정대영(에프비전 대표)

부활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태양의 빛이 동방에서 떠오르기에 붙여진 동방정교회.

정교회는 가톨릭.개신교와 함께 세계 그리스도교 3대 교파다. 가톨릭에 비해 수적으론 열세지만 정교회는 초대교회 때부터 신앙과 전통의 가르침을 굳건히 지켜오고 있다. 1054년 가톨릭과 정교회가 양분되기 전 1000년 동안 내려온 전통과 예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바티칸에 교황이 있는 것처럼 콘스탄티노플에 총대주교가 있고, 전세계 신자도 3억5000만명에 이른다.

정교회는 1900년 러시아 선교사가 서울 정동에서 성찬예배를 올리며 처음 한국에 전래됐다. 한국정교회는 러.일전쟁과 일제 강점기, 6.25 전쟁 등을 겪으며 2000년 100주년을 맞았다. 전체 신자는 2500여명. 가평에 수도원, 서울.인천.부산.전주.양구에 성당이 있고, 울산에 비잔티움 양식의 대성당도 짓고 있다.

서울 마포의 성 니콜라스 성당. 둥그런 돔 양식의 이곳 아래층에 작은 성 막심 성당이 있다. 그리스 신부가 있는 니콜라스 성당은 한국과 그리스 교인이, 러시아 국적 고려인이 신부로 있는 막심 성당은 러시아 교인이 예배를 보는 곳이다.

일요일 아침 성찬 예배에 참석했다. 가톨릭과 예식이 다른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일단 미사는 예배라고 부른다. 기도 한 구절이 끝날 때마다 성호를 긋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성호를 긋는 순서도 다르다. 머리와 가슴, 그리고 오른쪽 어깨와 왼쪽 어깨(가톨릭은 왼쪽부터) 순이다. 유난히 성화가 많은 것도 색다르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예배 전 성화에 입을 맞춘다. 초대교회를 따르는 예배 의식이 무척 장엄해 보는 이를 압도한다.

막심 볼코프. 러시아 대사관의 일등 서기관이다.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이 외무부였고, 첫 부임지가 한국이었다. 일요 예배를 거르지 않고, 성가대로도 활동하는 맹렬 교인이다. 하지만 그가 세례를 받은 것은 뒤늦은 1989년이었다. 세계정교회 중 최다인 6000만명의 교인이 있는 러시아지만 그 역사는 순탄치 않았던 것이다.

"소비에트 정권 시절 가혹한 박해로 종교 활동이 제한을 받았습니다. 레닌.스탈린.흐루시초프.브레즈네프 시기에 세력이 약해지기도 하고 또다시 살아나기도 하면서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으로 전환기를 맞았지요."

옐친.푸틴 대통령도 독실한 정교회 신자로 알려져 있다. 해박한 종교 지식과 굳은 믿음으로 다져진 막심의 말은 끊이지 않았다. 자부심이 가득한 모습이다.

"정교, 바를 정(正)자 아닙니까. 영어로는 Orthodox Church, 정통교회라는 뜻이지요. 정통성에 무게를 두지만 핵심은 '올바른 가르침'과 '올바른 믿음'에 바탕을 둔 '사랑'입니다. 모두 사랑 사랑 하지만 믿음이 없으면 사랑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그가 정교회의 일원이 된 계기는 부활절 직전에 갔던 예배였다. 부활절을 맞아 그 역시 부활한 것과 같다고 할까. "95년 우연히 한국정교회 95주년 예배에 갔습니다. 그때 마침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서울에 와서 예배를 집전했어요. 러시아에도 흔치 않은 제 이름과 같은 막심 성당을 짓는다는 말에 놀랐습니다. 하느님이 절 부르신 것 같았어요."

예배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린다는 그는 이 세상 어디서도 그런 기쁨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읽지도 않는 성경을 들고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그 앞에서 부끄러울 것도 같다. 신앙에 대해, 사랑에 대해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그에게서 종교의 순수성을 읽었다.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 그런 믿음 앞에서 그리스도교의 분화는 큰 의미가 없었다. 분열된 세상을 구원하는 건 사랑밖에 없을 테니까….

김나미 <작가.요가스라마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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