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경제, 자신감을 회복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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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금 우리 경제는 커다란 어려움에 처해 있다.올들어 두달에 걸친 국제수지 적자가 벌써 55억달러에 이르고 있다.원화가치도 계속 떨어지는 가운데 달러 수요가 계속 늘어나 외환보유고도 연초에 비해 30억달러 정도 줄어들어 3백억달러

수준이다.96년초만해도 경상수지 적자는 예상했지만 해외자본 유입에 따른 원화가치 상승을 우려했으며 외환보유고는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통화공급 또한 비교적 넉넉한 가운데도 시중 이자율은 오히려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며 주식시장도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국내 연구기관들은 올해 경제성장률도 지난해보다 하락해 6%수준이면 다행이라고 전망하고 있으며 국제수지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 않다.어느 한곳을 보아도 우리 경제에 대한 낙관적 구석은 없다고들 한다.

1년 남짓 사이에 반전(反轉)도 보통 반전이 아니다.지난해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국제수지 적자가 악화된 이유로 경기변동 요인과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요인을 들 수 있다.경기가 하강국면에 진입한 가운데 반도체 가격과 일본

엔화의 급격한 가치하락이 우리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다.이와 더불어 선진경제 진입에 필요한 노사.금융등 제도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데 따른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가 우리의 전반적 국제경쟁력을 약화시켰다.

이와 함께 올해 들어서는 정치적 요인이 우리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노동법 기습통과에 따른 노동정국,한보사태,그리고 김현철(金賢哲)사건등 정치불안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우리 경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그런데 보다 큰

문제는 정치적 불안이 심화되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우리 경제의 장래에 대한 근본적 신뢰와 자신감을 잃고 있으며 이것이 단기 경제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우리 경제는 단기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것이 사실이지만 여기서

주저앉을 만큼 허약한 체질은 결코 아니다.국제통화기금(IMF)등

국제기관들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등이 장기적으로 한국경제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펴는데에는 그만한 이유

가 있다.먼저 우리 노동력은 젊고 우수하며 근면하다.우리의

인적자본(human capital)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이며 노동력은 일본보다 훨씬 젊다.또한 우리는 아직도 우리 생산의 30%이상을 저축하며 투자하고 있다.우리 경제는 개방도가 높으며 제조업을 중심으로 이미 선진국들과 경쟁하면서 경쟁력을

높여왔다.우리 정부의 재정은 장기적으로 균형을 유지해올 정도로

건전하다.그렇다면 우리는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대한 자신감과

신뢰감을 가져도 좋다.그렇지만 우리 경제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을 보다 조속히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올바른 경제정책이 요청된다.

경제정책 책임자는 먼저 정치논리가 경제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철저히 배제해야 할 것이며 중단기 정책과 장기 정책을 적절히 나누어

구사해야 할 것이다.경제정책 책임자는 단기적으론 국제수지 축소와

물가안정에 노력해야 할 것이며 시장에 대한 불필요한 개입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예를 들어 올 들어 원화가치가 미달러에 대해 3.6% 하락한 것이 사실이지만 올해 높은 경제성장률과 국제수지 흑자를 기록한 일본의 엔화가치도 미달러에 대해 5.1%정도 하락했다.따라

서 원화가치의 하락은 달러의 전반적인 강세에도 기인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며 환율안정을 위한 시장개입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또한 앞서 언급한 외환보유고 문제와 환투기는 자본자유화의 폭과 속도를 조절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정부는 경제제도 개혁과 경제생산성 향상을 장기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다.금융개혁등 제도개혁의 경우,정부는 먼저 장단기 계획을 세운 뒤 단기 과제는 이번 정권에서 시행하되 중장기 과제는 다음 정권으로 넘겨야 할 것이다.과욕은 금물이다.

경제생산성 향상은 대표적 장기과제다.경제생산성 향상 정책은 금융과

재정정책등 수요를 조절하는 경제정책과는 달리 노동.자본등 생산요소의 효율성 증대와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기술개발등을 통한 공급측면의 경제정책이다.따라서 그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날 것이며 구호 중심의 단기적 효과를 노린다면 역(逆)효과가 날 것이다. 김인준 <서울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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