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여론흐름 귀담아 듣고 뉴스비중 매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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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흔히'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고 한다.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렸다는 뜻의 말인데,우리네 전통적 사고방식을 그대로 드러낸 어구다.그런데'인명재아(人命在我)'라고 하기도 한다.사람의 목숨은 자기스스로에게 달렸다는 뜻의 말인데,이 말 역시 우리의 사고방식에 오랜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목숨이'하늘'에 달렸다는 이야기와 목숨이'나'에게 달렸다는 것은 얼핏 보기에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그러나 우리의 전통과 사상의 뿌리에 대한 이해가 조금만

한다면'하늘(天)'과'사람(人)'을 같은 차원으로 보는

일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줄 안다.

한데 우리의 전통사상에서 하늘과 사람을 같은 차원으로 여기고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두가지 암묵적(暗默的)인 합의(合意)가 있음을 간과해선 안될 것 같다.

첫째는 철저한 생명 존중의 생각이다.여기서는'나'뿐만 아니라 나보다 더 중요한 것이'남'이고,남을'하늘'처럼 섬기고 나를'땅'처럼 낮춘다는데 그 생각의 참뜻이 있다고 지적된다.둘째는 사람으로서의'분수'를 지킨다는 생각이다.하늘에는

하늘의 길(道)이 있고,사람에게는 사람의 길이 있음을 인식하고 분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며,만약 그렇지 못하면 천벌(天罰)과 인벌(人罰)을 받게 마련이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백성들의 마음속에 깊이 깔려 있는 편린(片鱗)들은 시정(市井)에서 떠돌고 있는 말들을 귀담아 들어보면 금세 알 수 있는 일이다.오히려 그것을 제대로 모르는 것이 관계당국자고,그것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 하거나 않고

있는 것이 언론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가령 최형우(崔炯佑) 신한국당고문이 이른바 대권 도전을 앞두고 좌절한데서 그야말로'인명재천'을 실감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랄 수도 있겠지만,그것이 뉴스가치로서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독자의 지적에 나는 긍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현철越權 언론에도 책임

뿐만 아니라 일부 독자들은 김현철(金賢哲)씨의 국정 개입 의혹을 다루는 언론의 자세에 대해 두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첫째 문제는 언론이 金씨가 문민정부 출범 이래 국정에 개입한'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의혹'운운하면서 초점을 흐리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둘째는 金씨가 지난 4년동안 그토록 국정에 개입할 수 있게끔 방치한 책임은 언론에도 적지않이

있다는 것이다.만약 언론이 문민정부 출범 이래 올바른 자세로 보도와 비판에 임했다면 오늘날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권력과 언론의 관계에서 제기되는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시사

해 주고도 남는 것이 아닐까.

이런 문제들은 결국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언론 스스로가 자성(自省)해 제

정신을 차리고 올바른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속적인 차원의 것과는 달리 이른바 우주적인 차원에서도

우리의'하늘'에 대한 생각의 뿌리는 남다른 데가 있다고 해야 할

것같다.하늘이라는 말의 어원은 여러가지로 풀이되고 있지만

그것이'한울(一環)',곧 우주와 같은 뜻의 것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이른바 인내천(人乃天)사상이라든지,우아일체(宇我一體)의

사상 또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은 모두 같은 뿌리의 것이고,그것은 하늘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 전통사상의 폭과 깊이를 말해 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나는 우리의 홍익인간(弘益人間)정신도 이런 바탕과 뿌리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홍익'민족'이라 하지 않고 홍익'인간'이라고 한데 대해선 그야말로 탄복해 마지 않는 입장이다.

미흡한 일식.혜성기사 그런데 우리들의 하늘과 우주에 대한 생각이나 관심도에 비추어 신문들의 그것은 어딘가 미흡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지난 9일에 있었던 일식(日蝕)과 헤일-봅 혜성(彗星) 관계기사만 하더라도 그것이 세계적인 뉴스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취급한 지면의 크기나 사진의 크기와 내용은 만족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물론 중앙일보는 이미 세차례에 걸쳐 헤일-봅 혜성과 일식 관련의 예고편 기사와 특집을 냈기 때문에 다른 신문보다 질량(質量)에서 충족감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예고편이나 사전적(辭典的)인 해설기사가 아니라'사실'을 보도하는 사후적(事後的)인 기사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더군다나 이번의 일식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금세기 마지막 일식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관찰하기도 했고,많은 관심과 감격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또 나 스스로도 일식 장면을 직접 목격한 감격이란 이루 형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중앙일보에는 그런 감격이 사진이나 기사 어디에도 담겨 있지 않았다.그저 일식 사진과 함께 간단한 스케치가 고작이었다.뿐만 아니라 외신으로 들어온 시베리아에서 관측된 황홀한 개기일식(皆旣日蝕)의'코로나'장면마저 실리지 않았다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이규행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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