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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경제운용 방향] 비상시 BIS 비율 8% 넘는 은행에도 공적자금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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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마침내 공적자금 카드를 꺼낼 준비에 돌입했다. 다만 10년 전 외환위기 때와는 용도가 다르다. 1998년엔 망가진 은행에 부실은행이라는 딱지를 붙인 뒤 공적자금을 강제로 쏟아 부었지만 이번엔 건전한 은행에 미리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두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16일 내년 경제운용방향에서 “향후 추가적인 자본확충 지원을 위한 제도 정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구체적 방안을 18일 금융위원회의 대통령 업무보고에 담을 예정”이라면서 “은행 부실을 예방하기 위해 비상시에 공적자금을 선제적으로 넣어줄 수 있는 컨틴전시 플랜(비상대책)을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한국은행이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렇게 나선 것은 현행 규정이 은행 부실 예방을 위한 공적자금 투입에 족쇄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과 금융감독원의 은행업 감독규정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8% 이하로 떨어진 부실 은행에 한해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은행이 부실해지기 전엔 공적자금을 넣어줄 방도가 없는 셈이다.

9월 말 현재 7개 시중은행의 BIS 비율은 10.26%로 기준치인 8%를 넘는다. 하지만 지난해 말 12%에 비하면 건전성이 악화된 것이다. 더욱이 9월 중순부터 실물경기가 급랭하고 있어 BIS 비율은 갈수록 낮아질 공산이 크다. 선제적 대응이 절실한 상황인 것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아예 새로운 법령을 만들 수도 있다. 미국은 10월 초 긴급경제안정화법(구제금융법·EESA)을 확정하면서 공적자금의 투입 근거를 마련했다. 영국·독일·프랑스는 근거 규정을 만들어 금융회사에 공적자금을 쏟아 부었다. 일본은 금융회사가 부실해지기 전 공적자금을 넣을 수 있도록 지난 3월 말로 만료된 금융기능강화법의 부활을 국회가 심의 중이다.

시장에선 이미 공적자금을 서둘러 투입해 은행 자본을 확충해 주라는 지적이 많았다. 금융연구원 김동환 실장은 “BIS 비율이 8%로 떨어진 은행은 이미 망가진 상태이기 때문에 공적자금의 투입 효과가 작다”며 “부실화되기 전에 미리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의 배경엔 “수비만 해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공격형 마인드’가 깔려있다. 미리 은행 둑을 튼튼하게 한 뒤 살릴 기업은 살리고, 죽일 기업은 죽이는 구조조정의 속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경제운용 방향 설명에서 “위기 때는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고 강조했다. ‘죽이기 위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암시다.

물론 정부는 공적자금 투입에 앞서 시장에서 할 수 있는 자본확충 방안을 먼저 시행키로 했다. 우선 은행이 증자, 배당 유보, 후순위채 발행 등을 통해 스스로 자본을 확충할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달 초 금감원은 은행별로 1월 말까지 늘려야 하는 자본의 규모를 명시한 공문을 보냈다. 육동한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개별 은행이 주주들과 상의해 합리적으로 자본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 해결이 어려운 은행에 대해선 2단계로 연기금, 국책은행, 공공기관 등의 여유자금으로 자본확충펀드를 만들어 은행의 후순위채나 상환우선주 등을 매입해줄 방침이다.

이런 공격적 정책을 통해 내년에 3% 성장, 10만 개 일자리 창출을 추구하겠다는 것이 정부 구상이다. 정부 스스로도 “‘3% 성장’은 전망치가 아니라 목표치”(육동한 국장)라고 말했다. 관건은 속도다. 정부 정책의 속도가 경기급락 추세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정부의 행정력과 집행력이 신속하게 발휘돼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준현·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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