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金改委는 본질을 다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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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의 금융감독기관이 합동으로 미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계 은행에 대한 자금상황 점검에 나섰다.이는 한보사태 이후 악화된 한국계 은행의 국제적인 신용도 추락을 반영하는 것이다.

때마침 금융개혁을 논의하고 있는 금융개혁위원회(금개위)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기준(3개월이상 이자를 연체한 고정여신을 포함)으로 볼 때 현재 국내 6대 시중은행의 부실여신규모가 전체 여신의 14.3%인 23조3천억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금융감독원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1조6천억원(사실상 회수불능여신만 포함)의 20배가 넘는 규모다.미국보다 훨씬 느슨한 일본의 기준(6개월이상 이자를 연체한 고정여신을 포함)을 적용해도 5.1%인 8조3천억원에 이른다.

국제적인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시중은행은 건전성 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따라서 금개위는 당연히 어떤 문제에 앞서 이 문제를 최우선과제로 논의해야 한다.

금개위는 은행.증권.보험의 3대 기본영역을 제외한 금융영역간의 장벽을 없애고 경쟁체제로 가져가야 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이같이 포지티브시스템(할 수 있는 것만 규정)에서 네거티브시스템(할 수 없는 것만 지정하고 나머지는 자유

)으로 전환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국내 금융기관간 경쟁의 촉진으로 체질을 강화하는 것만이 외국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부차적인 과제고 금개위가 다뤄야 할 본질은 빈사상태에 있는 은행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정부의 개입을 없애 경영의 자율성을 확립하는 것이다.정부 일각에서는 은행의 대형화를 금과옥조처럼 되뇌이고 있지만 현재의 부실여신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해소하지 않고는 대형화는 아무 의미가 없다.부실여신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은행의 경영주체를 확립시키는 방안과 소유-지배구조의 개혁,그리고 인수합병에 따르는 인력조정가능성 등이 패키지로 다뤄져야 한다.금개위는 이 과제

를 장기과제로 넘기지 말고 당장 현안으로 올려 결론을 내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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