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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속의 중국인⑥] “한국서 취업을 생각한다면 한국어를 배우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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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의 중국 인재 확보전이 치열하다. 중국 현지 인력을 통해 중국적인 토착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전략이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중국인들은 한국기업과 중국시장을 잇는 튼튼한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 가오훙저(高黉喆ㆍ27)은 베이징체신대학 졸업 후 2007년 8월 SK에 입사했다. 그는 ‘중국 사업은 중국 인재에게’라는 SK 그룹 정책에 따라 2년간 한국에서 근무한 뒤 고국으로 돌아가 일하게 된다.
낯선 환경과 의사소통 문제로 한국 생활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는 통신사업부문에서 차세대 주역으로 당당히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의 한국 생활과 직장 생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SK를 선택한 이유는?
“졸업 후 직장을 구하던 중 같은 날 SK와 평소 마음에 뒀던 컨설턴트 회사의 입사제안을 동시에 받았어요. 직장을 찾는데 2달이 걸렸는데 반해, 두 회사 중 한 곳을 정하는데 한달 밖에 안 걸렸어요. 그래프를 그려가면서 두 회사를 비교하고 점수를 매겨봤죠. 스카우트 서신에 회답을 해야 했던 날, 저는 한 손에 컨설턴트 회사의 사인이 적힌 계약서를 들고 미안한 마음으로 SK C&C 중국 법인장께 인사를 드리러 갔죠. 이제야 알게 됐지만, 높은 자리인 법인장께서 저를 어찌나 반갑게 맞아 주시던지……. SKMS(SK경영관리체계)에 관한 책을 보여 주셨어요. 아마도 한눈에 제가 간 이유를 알아 보셨던 것 같아요. 법인장은 단도직입적으로 SK의 장점만 말하진 않았죠. 그저 침착하게 칠판에 중국에서 아름다운 발전을 꿈꾸는 SK의 청사진을 그렸죠. 그리고 그 청사진 아래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봐요, 이게 바로 귀국 후 당신의 모습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한 폭의 청사진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청사진 아래 작은 동그라미들은 제 눈앞에 있는 지혜롭고 재치있는 분에게 믿음을 심어줬어요. 지난 한 달 동안 선택을 두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시간들이 한 순간에 큰 반전을 이룬 셈이었죠. 그렇게 SK의 가족이 됐습니다.

-현재 한국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해선 여러 차례 면접을 거쳐야 하는데, 면접과정은 어땠나요?
“SK의 면접방식은 참 독특했어요. 중국에선 회사들이 인력절감을 이유로 한 명의 면접관이 여러 명의 면접을 진행해요. 하지만 SK사는 그 반대였어요. 6-7명의 면접관이 한 명을 면접했죠. 먼저 10-15분 정도 프리젠테이션을 한 뒤 입사동기와 입사 후 포부에 대해 말해보라고 했어요. 그리고 면접관 한 명씩 기술, 시장, 행위문제 등에 관한 질문을 했습니다. 면접을 마친 후 ‘체력이 정말 좋아야겠구나!’하고 결론 내렸죠.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프리젠테이션 후 어떤 분이 저에게 “당신의 프리젠테이션을 들으니 마치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강의실에 앉아 강의를 듣는 듯 합니다”란 말에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외국인 직원 채용 기준과 한국인 채용 기준은 같은가요? 만약 다르다면 어떤 점이 다른가요?
“대체적으로 같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다른 점을 꼽으면, 첫째로 채용인원 수가 너무 적어요. 나중에 들은 바로는 중국에서 SK의 채용비율은 정말 식은땀이 날 정도더군요. 황제에게 후궁으로 간택되는 것이 오히려 쉬웠을 걸요. 두 번째로는 중국에서 채용하고자 하는 인력은 모두 ‘지도자형 인재’라는 점입니다. SK가 중국인을 뽑는 이유는 이후 중국에서의 발전을 계속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겠다는 것이죠.”

-현재 어떤 업무를 맡고 있나요?
“SK C&C 통신사업부문에서 일하고 있어요. 통신기술상품에 대한 책임과 시장확대에 관한 업무를 맡고 있어요. 과거 시장조사 자료를 토대로 고객사를 찾고 프로젝트 완수 후 계약체결까지 이어지는 프로젝트 진행과 개발, 시장개척까지 모두 포함됩니다. 전 운이 좋아 프로젝트 운영의 전 과정에 참여 하면서 많은 새로운 통신상품을 접할 수 있었어요.”

-회사 생활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가장 성취감을 느꼈던 일이 있다면?
“회사생활과 직장동료들과 지내면서 힘든 점은 바로 한국어였습니다. 사람들과 소통하는게 어려웠죠. 회사 과장님과는 천천히 존댓말을 쓰는게 습관이 됐죠. 그랬더니 과장님이 집에서 절 흉내 내며 아내에게 “밥..먹..었..어..요..?”라고 말했더니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받았다네요.
고생이 말할 수 없어요. 중국어로는 2분이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걸 한국어로는 20분도 부족해요. 동료들이 처음엔 제가 조용한 성격으로 오해했죠.
가장 성취감을 느꼈던 일은 저희 팀을 위해 중국 최초의 응용서비스를 찾았던 일이에요. 이 일을 성취했을 때 무척 기뻤습니다. 회사도 제가 외국인이라거나 신입사원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통제하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기회와 책임을 제공해 줬습니다. 문제 해결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중국에서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됐죠. 더 왕성한 발전을 꿈꿀 수 있게 됐습니다.”

-회사생활을 시작했을 때 외국인 근로자로서 불편했던 점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는지? 또 한국 직장동료들과 친분은 어떻게 쌓았나? 퇴근 후 동료들과 잘 어울리는가요?

“먼저 언어소통 문제가 있었죠. 입사 초 전화 및 컴퓨터 설치, 집에 돌아가는 방법까지 하나하나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어요. 저 하나 때문에 어떤 동료들은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기도 했어요. 그 점이 마음에 걸리고 미안한 점이에요.
또, 동료들이 저와 소통을 위해 영어로 애를 썼죠. 내가 없었다면 부담 없을 식사시간도 나 하나 때문에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퇴근 후 함께 어울리자는 말에도 어쩔 수 없이 거절을 할 때가 많았어요.
해결방법은 한가지예요. 한국어를 배우는 거죠.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해결책이죠. 하지만 진정한 문제해결은 그들의 가치관, 이념과 제 마음을 서로 합치는 겁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어 그저 눈빛만 바라봐야 했던 많은 순간들, 언어가 통하지 않아 생기는 수많은 문제들, 마지막으로 봤을 땐 서로에 대한 신뢰와 배려를 바탕으로 이해하고 아우르는 것이 최고라 생각합니다.”

-한국의 회식문화와 술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한국의 회식과 술 문화는 직장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윤활유입니다. 한국 직장인은 하루 종일 일에 전념하고 공손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회식자리는 직급, 위아래, 친소를 떠나 솔직하게 스트레스를 해소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거나하게 취하고 나면 상대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게 되고 하나됨을 느낄 수 있죠.
하지만 한국의 소주는 정말 맛도 없고, 몸에도 많이 해로운 것 같아요”

-한국과 중국의 기업문화에 차이점이 있다면?
“여기서 말하는 문화적 차이란 한국과 중국 기업문화뿐만 아닌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차이라 생각합니다. 중국은 56개 민족이 함께 살고 있는 포용적인 국가입니다. 당신이 한족이던, 만주족이던 상관없이 모두 평등하게 존중합니다. 이를 중국 기업으로 축소시켜도 마찬가지에요. 당신의 성격이 활달하던 내성적이던 모두 당신이 어울릴만한 무대가 마련됐다 할 수 있죠. 중국에서는 사람과 기업 모두 자유와 존중을 매우 소중히 생각하는 나라입니다.
한국은 단일 민족 국가라는 이유로 사람들간의 단결심이 강하고 또 쉽게 단합합니다. 기업도 마찬가지로 반대의견을 표하는 사람은 극 소수에 불과해요. 하지만 이 때문에 생기는 제약도 있어요. 당신이 중국인이건,인도인이건, 미국인이건 상관없이 일단 회사 안에선 한국인이 정해놓은 보이지 않는 기준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하죠. 그래서 회사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관리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하지만 외국인근로자가 늘어나고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회사 역시 외국인 근로자를 포용할 방법을 점차 찾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생활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면?
“한국에 오기 전에 친구들이 서울은 ‘hot city’라고 말했어요. 신촌, 홍대, 대학로, 압구정 등 낮에는 별볼일 없는 곳 들이 밤이면 음악과 화려한 불빛으로 활기를 띱니다. 또 한국엔 커피숍이 정말 많아요. 한국은 커피숍과 악세사리의 천국입니다.
한국생활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속했던 울타리에서 벗어나 그 울타리를 바라볼 수 있는 절호의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는 점입니다. 이국타향에서 굳건한 우정을 갖게 해줬고, 내가 진정 필요한 것이 뭔지를 알게 해줬어요. 부모님의 요구가 족쇄가 아니라는 것도 체득했죠. 또 세계 어디에 있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어요.”

-한국은 외국인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나라라고 생각하나요? 만약 아니라면 외국인관련 제도나 일반인의 인식에 있어 어떠한 개선이 필요하다 생각합니까?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좋아요. 지하철이 매우 발달됐고 노약자나 장애인을 위한 시설도 잘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인관련 제도에선 확실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핸드폰 구매나 인터넷 신청 등에 있어 따르는 제약입니다. 최악인 건 매번 입국신청을 해야 하는 단수비자문제입니다. 이 부분은 회사에 무척 감사하고 있습니다. 외국인이기에 따르는 많은 불편한 점들을 풀어줬으니까요.”

-앞으로 한국에 계속 머물면서 경력을 쌓을 계획인가 아니면 귀국할 계획인가요? 그 이유는?
“한국에서 있는 모든 중국 직원들은 2년 근무를 마친 후 중국으로 돌아가 SK지사로 파견될 예정입니다. 회사의 계획에 따라 저 역시 지속적으로 중국관련 프로젝트를 맡으며 1년 정도 더 한국에 머물 계획입니다. 현재 맡고 있는 프로젝트가 자리잡으면 아마 돌아가 새로운 업무에 착수할 것 같아요. 저 역시 여기서 1년 정도 더 머물고 싶은 바램입니다. 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한국을 세세하게 음미할 시간이 필요니까요.”

-한국에 있는 후배들에게 충고한마디 하자면?
“제가 아직 후배인데요… 아직은 다른 사람에게 충고할만한 자격이 없어요. 덕담 한마디만 한다면 취업여부와 장소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바로 건강한 몸과 마음가짐입니다. 부모님들이 늘 하던 잔소리라 들리겠지만 이런 말들이 아직 통하는 것 역시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 아닐까요.”

정리=조선희 연구원
번역=선우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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