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로 實利얻자' 얼굴바꾼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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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이 황장엽(黃長燁)노동당비서 망명사건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협상국면으로 재빨리 복귀,전방위 외교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黃비서 사건 때문에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측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黃비서 망명을 한국측에 의한 납치사건으로 규정하고 위협하던 모습과 크게 달라 주위를 어리둥절케 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파견한 경수로부지조사단을 받아들인데 이어 3자설명회와 북.미간 준고위급회담에도 잇따라 참석했다.

특히 북한측 대표인 김계관(金桂寬)외교부 부부장은 워싱턴도 방문,미 국무부및 의회 관계자들과 만나 연락사무소 개설문제등 북.미 관계개선을 위한 실질적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 외교부 김영남(金永南)부장도 지난 8일 중국을 방문,黃비서 망명사건 마무리를 위한 협의를 가진데 이어 기니.나이지리아.앙골라.짐바브웨.탄자니아.우간다등을 순방중이다.그는 지난해 4,5월에도 리비아.알제리.시리아.튀니지.모로코

.수단등을 방문한바 있다.

이에 앞서 김창룡(金昌龍)외교부 부부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은 지난달 25일부터 스위스.독일.노르웨이등을 순방하며 대북 식량지원및 경제기술협력문제등을 논의했다.

특히 북한은 지난 3일 베른에서 열린 스위스측과의 협의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중점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또 무역.금융투자에 관한 남남대회(코스타리카).세계경제포럼(다보스).암스테르담 경제세미나등에 실무 대표단을 파견,경제외교활동도 더욱 활발히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국면을 전환,전방위 외교를 더욱 강화하는 것은 체제유지및 경제난 타개를 위한 절대절명의 필요성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이미 60년대부터'사상혁명'을 통한 동원체제를 구축,자본주의를 따라잡겠다는 전략을 추구해왔으

나 경제가 파탄상태에 이르렀다.

게다가'사상혁명'의 지주인 黃비서마저 북한을 떠남에 따라 북한지도층은 외교를 통한 생존전략밖에 버틸 힘이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고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북한의 강인한 외교술도 국면전환의 중요한 요인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북한 외교는'돌뿌리에 걸려 넘어져도 돌멩이 두개를 집어들고 일어난다'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도 역전시켜 실리를 얻는 것이 북한 외교의 본질이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북한은 黃비서 망명이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미국.일본.유럽등 주요 거점과 아프리카.아시아의 비동맹 국가를 중심으로 한 외교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성진 전문기자〉

<사진설명>

김정일과 황장엽

지난 85년 만경대지구건설계획에 대한 현지지도에 수행했던 당시 황장엽

비서(오른쪽에서 세번째). [통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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