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이 뜨거운 노래 당신은 들으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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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시각장애인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34·사진)은 지난달 20일 첫눈 소식을 듣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 생각 때문이었다. 간암 투병 중이던 어머니(안재순·당시 56세)를 패혈증으로 떠나 보낸 지 정확히 1년 되는 날이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그날도 눈이 왔었죠.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우리 제덕이, 잘 지내지’라고 안부를 물어오시는 것 같아 그날 밤 술을 마시며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2년 만에 새 앨범 ‘어나더 스토리(Another Story)’를 막 내놓은 터였다. 앨범에는 ‘우울한 편지’ ‘행진’ ‘광화문 연가’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등 전제덕의 어쿠스틱 재즈 감성으로 덧칠한 1980, 90년대 노래가 많다. 이미자의 트로트곡 ‘섬마을 선생님’은 의외의 선곡이지만, 그에게는 가장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어요. 노래방에서 그 노래를 불러드리면 아이처럼 좋아하셨죠. 아들에게 더 많은 것을 못 해줘서 늘 가슴 아파 하던 평범한 어머니였습니다. 고등학교(혜광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통기타를 사들고 학교에 오셨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몇 년 뒤 그 기타가 망가져서 버렸는데 요즘 왜 그리 후회가 되는지….”

그는 “90년대 초 함께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어머니는 의식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도 ‘우리 제덕이한테 가야 하는데…’라고 중얼거리셨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섬마을 선생님’이 연주곡으로 리메이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곡가 박춘석씨 측도 전제덕의 눈물겨운 사모곡이라는 설명에 흔쾌히 허락해줬다고 했다. 우크렐레(하와이 민속악기) 연주는 트로트색이 짙은 노래를 이국적인 느낌의 멜로디로 재탄생하게 만든 효과적인 장치였다.

‘광화문 연가’는 올해 초 작고한 작곡가 이영훈씨를 위한 추모곡. 전씨는 ‘옛사랑’ 앨범 중 ‘기쁨의 날들’ 녹음에 세션으로 참여하며 이씨와 인연을 맺었다.

“이씨의 빈소에 갔을 때 유족들이 ‘고인이 제덕씨를 무척 좋아했었다’며 울컥 눈물을 흘리더군요. 최근 가수 BMK의 공연에 게스트로 나서 ‘광화문 연가’를 연주했는데, 1절만 끝났는데도 객석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어요. 곡이 갖고 있는 페이소스를 제 하모니카 연주가 극대화시킨 것 같습니다.”

전씨의 소원은 생후 7개월 된 아들 윤표를 음악인으로 키워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이다.

“어려운 형편상 제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지 못한 것을 어머니는 늘 한스럽게 생각하셨는데, 그 꿈을 제 아들이 이뤄 주길 바라는 거죠. 20년쯤 뒤 제가 아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멋진 곡을 연주하면 어머니도 하늘에서 박수를 치시겠죠?”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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