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Leisure] 홍천 삼봉 휴양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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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짜릿한 삼봉 약수 한 모금이면 심신이 부르르 깨어납니다.

안팎으로 들려오는 어두운 뉴스 때문이었나,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 정신을 빼놓고 있었나.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나보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날씨의 변덕스러움도 한몫했을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면서도, 한낮에는 등줄기에 땀이 흐를 정도로 햇살이 쨍쨍하니. 봄과 여름이 공존하는 시기 아닌가.

강원도 홍천의 삼봉 자연휴양림(내면 광원리). '지쳤다' 생각되면, 주저없이 찾아볼 만한 곳이다. 몸과 마음을 맑게 해주는 숲이 기다린다. 그것도 때 묻지 않은 원시림이다.

수도권에서 멀지 않은 홍천에 원시림이라니.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른다. 홍천읍내에서 휴양림까지만 80㎞ 거리다. 홍천은 전국의 시.군 중에서 땅이 가장 크다. 더욱이 동서로 길쭉한 지형이다보니 경계를 맞대고 있는 시.군만 해도 강원도 춘천시.인제군.양양군.평창군.횡성군, 그리고 경기도 양평군.가평군 등 7개나 된다. 그런 홍천군의 동쪽 깊숙한 곳에 삼봉 휴양림이 있다.

홍천~양양 간 56번 국도를 벗어나 휴양림으로 가는 4㎞의 들머리 숲길. 비포장이긴 하지만 제법 폭이 넓어 쾌적한 느낌마저 든다. 길섶으로 전나무.피나무가 도열해 있지만 아직 원시림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가칠봉(1240m).응복산(1155m).사삼봉(1107m) 등 세개의 봉우리의 가운데쯤에 휴양림이 있다. 그래서 이름이 삼봉이다.

차가 드나들 수 있는 길의 끝에 다다르면 가칠봉으로 오르는 계곡의 들머리다. 천연기념물 열목어가 살 정도로 물 맑은 계곡, 톡쏘는 맛이 일품인 삼봉 약수, 그리고 계곡을 따라 펼쳐지는 원시림. 휴양림이 갖춰야 할 삼박자를 모두 갖췄다.

약수터에서 나무 다리를 지나 신발끈을 고쳐 매고 계곡을 오른다. 듬성듬성 피어 있는 노란색의 산괴불주머니꽃이 먼저 인사를 하고, 조금 더 들어가면 보랏빛의 벌깨덩굴이 수런수런 이야기를 나누는 듯 모여 있다. 길쭉한 잎 밑으로 잎자루마다 하얀 꽃을 달고 있는 둥글레, 그리고 맥주 향을 낼 때 그 뿌리를 재료로 쓴다는 선갈퀴의 작고 하얀 꽃도 반갑다.

나무마다 이름표를 달고 있으니 황벽나무.서어나무는 꼭 찾아 만져본다. 코르크 재료로 쓰는 황벽나무 껍질은 탄력 있어 부드럽고, 꼿꼿이 자라는 법 없어 줄기가 휘어 있는 서어나무의 거죽은 돌마냥 단단하다.

산길을 따라 계곡은 잠시도 헤어지지 않고 돌돌돌 물 흐르는 소리를 들려주고, 뭇 산새도 아침.저녁.한낮을 가리지 않고 쉼없이 울어댄다. 산그늘마다 왕관처럼 둥글게 잎을 펼친 관중이 군락을 이룬다.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이놈들이 지천으로 깔린 것을 보면 과연 원시림이다.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의 깊은 숲에서만 자라는 것들이니. 웬만한 휴양림에선 보긴 어렵다.

약수터에서 산림 체험로의 끝 부분인 목책까지 1.7㎞. 약수터를 통과하자마자 휴대전화는 이내 불통이 돼버렸다. 차라리 잘 됐다. 이런 곳에서까지 휴대전화에 시달릴 필요가 있을까.

돌마다 이끼 가득한 계곡가에 앉으니 산바람 맞으며 책을 읽고 싶어진다. 법정 스님 수필집을 한권 들고 올 것을 깜빡 잊었다.

글=홍천 성시윤 기자<copipi@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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