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한 대형 석유회사 광고, 미디어서 퇴출시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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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호 12면

브라질의 여성 미래학자 로사 알레그리아(51·사진) 상파울루대 교수가 11일 유엔미래포럼 한국지부(대표 박영숙)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건전한 미디어 환경을 만들기 위한 세계적 운동 ‘희망의 모습과 소리(Image and Voices of Hope)’를 이끌고 있다. 유엔미래포럼 브라질지부 대표이기도 한 그는 한국의 클린콘텐츠운동연합과 ‘유해 콘텐트 추방 운동’을 공동으로 펼치는 방안도 논의한다. 13일 중앙일보 편집국에서 그를 만났다.

‘희망의 모습과 소리’ 이끄는 미디어 운동가 로사 알레그리아

-최근 한국에서는 탤런트 최진실씨 등 유명인들이 인터넷 악플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혹시 브라질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나.
“브라질은 한국보다 인터넷 보급률이 훨씬 낮다. 대신 모든 국민이 TV를 본다. 얼마 전 브라질에서는 한 남자가 자신의 여자친구를 납치한 일이 있었다. 이 남자는 자신의 범행이 TV와 신문 등에 알려지자 여자친구를 총으로 쏴 버렸다. 미디어가 흥미를 좇아 이 남자를 따라가지 않았다면 그가 그런 극단적 행동을 했을까. 미디어가 폭력을 부추긴 셈이다. TV의 선정성과 폭력성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 심각해 이를 바로잡기 위한 운동을 진행 중이다.”

-‘희망의 모습과 소리’ 말인가.
“그렇다. 브라질 아이들의 평균 TV시청 시간은 무려 6시간이나 된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브라질 아이들은 뉴스에서 여과 없이 방영되는 폭력적인 장면이나 선정적인 광고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돼 있다. 거식증으로 사망하는 젊은 여성들이 매년 늘어나는데 이 역시 날씬한 여자만 광고에 출연시키는 경향과 관계가 깊다. 우리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좋은 뉴스, 사회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킨 의미 있는 보도를 조명해 이런 뉴스들이 더 많이 생기도록 유도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효과가 있었나.
“올해 초 브라질 정부로 하여금 광고법을 개정하게 만들었다. 이제 비만이나 오·남용을 유발할 수 있는 식품에 대한 광고가 금지된다. 광고를 통해 거짓말을 하는 기업을 고발하는 운동도 펼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환경을 중요시한다’는 한 대형 석유회사의 광고를 퇴출시켰다. 그 광고가 실상과 전혀 다르다는 증거를 제시해 망신을 줬다. 인터넷 기반인 한국의 미디어 환경에서도 이러한 운동이 매우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당신은 기업뿐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노력하는 ‘도덕적 시장(Ethical Market)’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녹색정책과 경제성장은 양립할 수 있다고 보나.
“앞으로 성장(growth)이라는 단어는 아예 없어지거나 개념이 완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성장과 지속가능한 녹색정책은 양립할 수 없다. 이미 인간의 경제활동은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각 나라는 앞으로 ‘지속가능한 발전’ 혹은 ‘지속가능한 사회’라는 개념을 비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미디어도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친환경적 가치를 보다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로사 알레그리아(Rosa Alegria)
브라질 최대의 화장품 회사 ‘에이본(AVON)’ 최고경영자 출신의 미래학자다. 그는 정부·기업·비정부기구(NGO)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범사회적 여성 건강 증진 프로그램을 만든 공로로 1997년 브라질 미국상공회의소로부터 베스트 기업시민상을 받았다. 그는 15일 인간개발연구원(회장 장만기)이 주최하는 미래포럼에 참석해 ▶미디어의 변화와 역할 ▶기업의 지속성장과 사회적 책임 ▶양성평등의 사회적 실현과 여성사회의 장기적 도전과제 등을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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