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글쓰기 대필(代筆) 독자 우롱인가 정당한 관행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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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소설 “재즈 SEX”의 약사(藥師)작가 이수진(33)씨는 지난해말 황당한 소송을 해야 했다.저자 본인도 모르게 출간된 “재즈 SEX”3편 때문이다.낯 뜨거운 내용이 가득하고 문체도 제멋대로인 책이 버젓이 자신의 이름으로 나온데다 책중 ‘저자의 말’에는 책 내용이 작자의 실체험에서 비롯됐다는 얘기까지 적혀 있었다.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당장 소송을 낸 이씨는 한달만에 전량 수거·폐기에 약간의 보상금을 받는 조건으로 출판사와의 싸움을 마무리했다.소녀시절 품어왔던 작가의 꿈을 이룬지 겨우 1년만이다.

자신을 ‘창녀’마냥 묘사한 이 책의 출간은 이씨에게 깊은 상처를 줬다.자신의 습작을 출판해줘 작가의 꿈을 이루게 했던 바로 그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여야 했던게 그는 가장 씁쓸하다고 했다.출판사측은 ‘등단의 은혜’를 생각해 작가가 침묵할 것이란 예단을 내리고 대필작가를 동원해 저자도 모르게 속편을 내는 무리수를 던진 것이다.기본 ‘상도의(商道義)’를 무시할 만큼 경영압박이 큰 출판현실 탓이다.이씨는 그렇게 이해한다고 했다.소송에선 이겼지만 왠지 모를 앙금이 남는 것도 그 때문이다.이 과정에서 이씨는 누가 자기 대신 글을 썼는지,고료(稿料)는 얼마나 줬는지등이 궁금했으나 출판사측은 끝내 대필작가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작가를 꿈꾸는 글쓰는 기계’‘고스트라이터(유령작가)’.

음지에서 일하되 양지를 지향한다는 대필(代筆)작가를 부르는 말이다.과거엔 주로 정치·연예인의 자서전이나 에세이를 대필했던 이들이 최근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재즈 SEX”의 경우처럼 창작 영역을 침범하는가 하면 건강·컴퓨터·레저·재테크등 각종 실용서의 절반이상이 이들의 손을 거쳐 탄생한다는게 출판계의 정설이다.이들은 예전처럼 철저히 음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초고정리자·진행자등으로 자신을 당당히 밝히기도 한다.저자 이름의 옆이나 밑에 정리,진행,도와주신 분등의 이름이 들어있으면 그가 바로 대필작가이며 그 책은 대필한 책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이들의 역할과 책임등 정당한 자리매김이 최근 출판문화의 화두로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영사는 근간(近刊) ‘조형기의 배짱영어’에서 대필작가와 감수자등 작업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을 모두 밝혔다.실제로는 대필작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집필하고 유명인의 이름만 빌린 책들을 쏟아내던 관행을 깨뜨린 것이다.마가을출판사(대표 안철환)는 올 여름 출간예정인 환경관련 에세이집 ‘작은 마을의 느림보’를 기획하면서 작가와 대필작가의 이름을 밝히고 ‘두 작가’ 모두에게 인세를 지불키로 했다.익명성과 무책임성으로 정의되는 대필과 대필작가의 위상이 변하고 있음을 알게하는 대목들이다.

이같은 변화는 주로 각종 실용서들이 쏟아지면서 비롯됐다.실용서 출판홍수는 ‘전문지식과 대필작가의 결합’을 부추겼다.한쪽은 소재가 있고 한쪽은 문장력이 있다.둘의 결합은 당연히 더많은 독자에게 더많은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는 논리다.지난해말 출간돼 최근 저자의 방송출연등을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건강법의 대필작가 조모(32·여)씨는 “저자가 썼으면 열 사람이 읽을 것을 대필작가의 문장력으로 백 사람이 읽게 된다”며 대필의 당위성을 얘기한다.전 미국 정보요원인 한 한국계 미국인의 저서 ‘미국은 한국의 다음 대통령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와 ‘NO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은 각각 다른 출판사에서 저자의 구술을 녹취하는 작업을 거쳐 대필됐다.‘오랜 미국생활로 한국어 문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저자에게 대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이처럼 ‘문장력 부족으로 사라질 수도 있었던 전문·실용정보를 살려내는 역할’로서의 대필은 분명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대필문화 전체로 보면 아직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현재 국내에서 활동중인 대필작가는 어림잡아 2백∼3백명.3권이상 대필 경력자를 기준삼아 알음알음으로 꼽아본 숫자다.대개 학연등을 통해 ‘입문’하며 30대 초·중반의 여성이 주류를 이룬다.이들은 아직까지 자신을 감추는데 익숙해 있다.자신의 일과 이름은 밝히더라도 자신이 쓴 책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한다.출판사가 실명 밝히기를 원치 않는데다 저자의 사회적 명망이 손상될까 두려워서다.둘중 어떤 경우에도 대필작가는 일자리를 잃기 십상이다.

이같은 관행과 의식의 근저에는 상업성이 자리한다. 출판사로선 이름없는 대필자보다 저명인사를 저자로 내세우는 것이 판매에 도움이 된다.이름을 숨겨야 다작을 통한 고수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는 대필작가들의 이해와도 일치한다.

대필작가 신모(33·여)씨는 “단기간에 고수익을 얻는 게 대필의 매력”이라고 말한다.대필작가의 지명도나 저자의 신분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자서전의 경우 글값은 대개 원고지 한장에 1만2천원 정도다.원고지 1천장분량의 평균 집필기간은 두달.산술적으로 1년이면 5천만원의 수익도 가능하다는 계산이다.대신 직업의식이 희박하고 창작욕구를 전혀 드러낼 수 없으며 돈에 따라 집필내용과 방향이 정해지는 숙명을 감내해야 한다.그것은 출판문화의 질적 저하와 곧바로 연결된다.이 지점에서 대필은 존재의 당위성을 잃고 만다.

출판전문가들은 출판발전을 위해 제대로 된 대필문화의 정착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대필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정보로부터 차단되며,자서전이 대필의 주류를 차지하는 풍토에선 대필이나 대필작가의 존재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우선 자서전류의 대필은 목적자체가 작위적이다.본인이 직접 쓴 자서전엔 왕왕 필자의 자기반성이 담기지만 대필작가의 글은 칭찬과 미화로 일관하는 게 보통이다. 대신 글 써주기의 속성탓이다.출판사 푸른 숲의 김학원씨는 이를 ‘주인 없는 글이 가지는 한계’라고 정의한다.김씨는 ‘평전(評傳)문화의 활성화’를 대안으로 제시한다.제3자의 시각에서 당대·선대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야 자서전류가 자리를 못붙이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래야 저자의 일방적 구술에 의한 글쓰기에서 자유로워지고,이는 곧 대필자의 객관적 정보입수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등에선 자서전이라도 대필자를 밝히는 게 관례다.‘아이아코카’자서전을 쓴 윌리엄 노바크는 책표지에 공저자(共著者)로 당당히 명기된 것은 물론 이후 집필료로 편당 1백만달러를 요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저자의 양식도 대필자를 음지에서 끌어내 바른 대필문화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요소다.최종원씨는 석달전 출간한 자전에세이 “형,이건 연극이 아닐지도 몰라”의 서문에서 대필작가 이성숙씨의 이름을 밝히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그런가 하면 모 변호사의 최근 저서는 대필작가 유씨가 거의 전문을 쓰다시피 했음에도 그 변호사가 방송에 출연해 ‘창작의 고통’을 열심히 토로하는 통에 정작 집필자였던 유씨가 무척 씁쓸해 했다고 한다.

대필은 그것이 대리창작이 아닌한 더 이상 부끄러울 것도 음지에 숨어 있을 이유도 없다.또 숨어 있어서도 안된다.대필과 대필작가가 숨어있는 한 질높은 출판문화도 함께 숨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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