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곳곳에 무장軍 야영- 한경환 특파원, 내전위기 알바니아를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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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블로러시에서 총격전이 다시 일어났다.”“정부군이 무장시위대에 최후통첩을 내렸다.”

사실상 내전상태에 돌입한 알바니아.수도 티라나시 중심가에 위치한 오이로파 파크 호텔.

전화부스에 길게 늘어선채 자신들이 취재한 내용을 본사에 송고하느라 각국어로 고함을 질러대는 외신기자들의 목소리엔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 배어있다.

살리 베리샤 대통령이 강경 무력진압 방침을 변경했다는 소식이 있지만 티라나 현지 분위기는 전혀 이를 믿지 못하는 식이었다.

비록 수도에선 남부 소요지역의 뉴스가 통제되고 있었지만 지하언론을 통해 사란더시에선 전투기가 시내를 폭격했고 블로러에선 무장시민들이 다리를 폭파했다는 소식들이 유포되고 있어 시민들은 조만간 정부군과 시위대가 대형 유혈참극을 빚어낼것이라고 말했다.

6일 오후1시30분(한국시간 오후10시30분) 티라나 국제공항에서 시내 중심가의 오이로파 파크 호텔까지 기자를 태워다준 택시기사도“북부지역 게그족 출신인 베리샤가 이번에도 간교하게 시간과 명분을 벌려고 할뿐 야당의 연정요구에 응하

지 않을 것”이라며“결사적으로 대통령을 내쫓으려고 하고 있어 결국엔 군을 동원한 유혈진압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또“남부의 도시들로 통하는 시 외곽도로들이 모두 정부군의 탱크와 무장병력에 의해 차단된 상태”며“티

라나의 언론은 모두 베리샤의 추종자들이 장악해 언론에선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턱수염이 길게 난 이 택시기사는 공항에서 30여분 정도 걸리는 호텔까지 가면서 연신 베리샤에 대한 원망을 늘어놓고 있었다.

아직 직접적 충돌이 없는 수도 티라나에서도 엄중한 경비가 펼쳐져 기자는 호텔까지 가면서 중무장한 군인들로부터 다섯번에 걸쳐 검문을 당했다.

또 시내 곳곳엔 군인들이 시멘트 벙커를 만든채 야영을 하는 듯한 모습이 보여 정부군이 장기전에 대비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취재를 위해 시내 중심가를 돌며 만난 경찰들의 기관총을 어깨에 멘채 자전거를 타고 순찰을 도는 모습이 동구의 최빈국이라는 알바니아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티라나시 중심도로인 셰스토리아 데슈모레테 콤비트가엔 경적을 울리면서 일제 토요타 밴을 몰고 기세등등하게 거리를 질주하는 신흥사업가(마피아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요기를 때울 겸 들어간 무슬림 샤리가의 카페.

손님이 없어 파리를 날리던 주인이 기자가 들어가자 얼른 일어나 반갑게 맞으며“방금 라디오에서 베리샤 대통령이 대통령 관저에서 야당 지도자들과 긴급 면담을 가졌다”고 일러줬다.

기자가“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것인가”라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남부 사란더시와 블로러시에서는 무장 시위대가 이미 완전 무장한채 정부군과 대치하고 있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기자가 다시 오이로파 파크 호텔에 들어섰을 때 알바니아 내무부를 출입하는 현지 기자가 막 몇명의 외신기자들에게 현재상황을 브리핑하고 있었다.

“사란더시에서는 정부군이 무장상륙정을 이용해 시위대를 급습할 것이라는 소문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또 시민들이 도시 주변 바리케이드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도시입구에 탱크 3대를 배치했다.

내무부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시민들이 정부군의 진입을 막기 위해 그리스 접경의 다리를 폭파했다고 한다.”

수도 티라나의 분위기와 달리 남부지역에선 긴장이 한층 고조되고 있었다. <한경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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