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분황사, 138m 회랑 갖춘 거대 사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사진=문화재청]

지금은 모전석탑(模塼石塔·돌을 깎아 만든 벽돌로 쌓아올린 탑)만 외로이 지키고 있는 경주 분황사 터. 신라 선덕여왕 3년(634년)에 창건된 분황사는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최고의 사찰 황룡사와 어깨를 겨룰 만큼 거대한 사찰이었다. 이런 분황사의 화려한 옛 모습을 짐작케하는 유적이 발견됐다. 또 사적 제18호 경주 임해전지(안압지) 북쪽 지역에서는 잘 다듬은 돌 기단을 갖춘 통일신라시대 대형 건물터를 비롯한 8동의 왕궁 유적과 대형 담장 터, 우물 등이 발굴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12일 경북 경주시 신라 왕경유적 및 분황사 터 발굴조사 현장에서 성과 보고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공개한다.

분황사 석탑에서 남쪽으로 30.65m 떨어진 지점에서 사찰의 남쪽 정문인 중문(中門) 터가 발견됐다. 문 양쪽에서는 동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남쪽 회랑(回廊·지붕이 있는 긴 복도) 자리가 확인됐다. 1990년 실시된 분황사 발굴 조사에서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내용이다. 회랑은 길이가 138.4m로 황룡사(176m)와 비교하여도 뒤지지 않는 규모다. 신라 가람 가운데서 지금까지 황룡사에서만 발견됐던 이중으로 지어진 복랑(複廊) 구조를 갖췄다는 점도 주목된다.

지난해 시작된 안압지 북쪽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1호 대형 건물터는 1동의 길이가 30m가 넘는다. 건물 기둥을 받치던 초석은 지름이 2m에 달한다. 경주문화재연구소 이주헌(45) 학예연구관은 “안압지 주변이 신라시대 태자(세자)가 머물던 동궁을 비롯한 주요 관청 밀집 지역이었다는 학계의 추정을 뒷받침하는 근거”라고 설명했다.

4호 건물터 서쪽에서 발견된 깊이 7.3m의 우물 내부에서는 신라 6부(六部·씨족을 중심으로 나눈 경주의 여섯 행정 구역) 중 하나인 ‘습부’(習部), 도량형 관련 단어로 추정되는 ‘병일두’(丙一斗) 등 다양한 글자를 새긴 기와와 토기, 상아에 점을 새겨 만든 주사위 등이 출토됐다.

이에스더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