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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채는 ‘머니 블랙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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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미국에서 마이너스 금리 시대가 열렸다. 안전 자산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9일(현지시간) 미국 채권시장에서 3개월 만기 국채 수익률은 -0.01%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 -0.05%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튿날 다시 소폭 플러스로 올라섰지만 3개월물 국채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은 1940년 이후 처음이라고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전했다.

수익률이 -0.05%라는 건 1만5달러를 주고 3개월 뒤 1만 달러를 돌려받는 채권을 산다는 의미다. 수익이 더 많이 나는 자산에 투자했다가 돈을 떼이느니 조금 비싸도 원금은 돌려받는 자산에 넣어두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머니마켓펀드(MMF)를 포함한 채권 펀드들이 국채를 사려고 안달이다. 투자 내역을 공개해야 하는 연말을 맞아 펀드에 국채 같은 안전한 자산이 많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웰즈 캐피털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제이 뮐러는 “일부 펀드는 국채를 어느 정도까지 보유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유리해졌다. 돈 쓸 데가 많아 국채를 계속 발행해야 하는데 이자 부담이 없어졌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런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미국 정부는 경제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돈을 계속 풀고 있다. 시중에 돈이 넘치면 결국 돈줄이 막혀 위험해진 기업이나 금융사에도 흘러들어갈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돈이 금융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국채에 잠겨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불황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1980년대 일본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제로 금리와 마이너스 금리에도 안전한 자산에만 돈이 몰리는 바람에 정작 돈이 필요한 기업이 속속 쓰러졌다. 심각한 불황이 10년씩 이어진 이유다.

굿모닝신한증권 정의석 투자분석부장은 “국채 수익률과 함께 다른 금리도 내려간다면 경제에 좋은 효과를 내겠지만 회사채 수익률은 오히려 더 올라가고 있다”며 “시중에 부도 위험이 줄어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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