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佛心 이용 '反中 달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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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석가탄신일을 맞아 홍콩은 뜻밖의 경사를 맞았다. 중국 대륙이 애지중지하는 '불지사리(佛指舍利)'와 20여점의 다른 국보를 홍콩에 보낸 것이다.

불지사리는 1987년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의 법문사 지하에서 발견돼 지금까지 두 차례만 바깥 나들이(태국.대만)를 했다. 길이 40.3㎜, 무게 16.2g인 이 사리는 2489년 전에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7일간 다비식을 거쳐 남은 왼손의 가운데 손가락뼈다. 부처님의 몸처럼 숭배를 받는 성물(聖物)이다.

26일부터 불지사리를 전시한 홍콩섬 완짜이(灣仔)의 컨벤션센터는 시민들이 100m도 넘게 줄을 섰다. 이들은 '만덕이 장엄하다(萬德莊嚴)'는 현판 아래 모신 삼존불상을 향해 소원을 빌었다. 불교계 관계자들은 "앞으로 열흘간 대략 50만명이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정부는 불지사리를 보내면서 철통 같은 보안과 환영 의식을 펼쳤다. 특별 전세기가 뜨고 산시성 부성장 등 100명의 지도층 인사들이 시안 근처의 셴양(咸陽)공항까지 나왔다.

여기에다 당 통일전선부장을 겸한 류옌둥(劉延東.59) 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이 홍콩으로 건너와 봉축행사를 직접 주관했다. 劉부주석은 선친이 농업부 부부장을 지낸 태자당(太子黨) 출신. 최고 실권자 장쩌민(江澤民)전 국가주석과 선친 시절부터 인연을 맺고 있다.

하지만 홍콩을 찾은 그의 행보는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그는 각계 인사들을 만나 "홍콩의 정치개혁(행정수반 직선제 도입 여부) 분쟁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양로원.유치원을 방문하고 청년.부녀층, 종교계 인사들을 숨가쁘게 만났다.

홍콩에선 6.4 천안문사태 15주년을 앞두고 이달 말부터 대대적인 반중(反中)시위가 예정돼 있다. 중국의 민주화와 홍콩의 자치 확대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이런 분위기가 오는 9월 홍콩의 입법회 선거(60석 중 30석만 직선)까지 이어지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내세운 중국으로선 큰 타격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이번 행사가 홍콩인의 반중 정서를 달래기 위한 선심용이라는 귀엣말이 나돌고 있는 것이다.

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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