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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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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실업과 이민을 연결시키는 상상력은 재미동포들한테서 자주 발견된다. 조국의 넘쳐나는 노동력을 여전히 기회의 땅인 미국의 여러 지역으로 흘려 내보내자는 발상법이다. 한국은 좁고 인구가 많은 대신, 미국은 넓고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으니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중부의 인디애나주(州)는 크기는 남한만한데 인구는 400만명에 불과하다. 우리의 10분의 1이다. 중서부의 콜로라도주는 한반도만한 크기에 인구는 700만명이다. 이런 주들에 사는 소박한 미국인들은 오는 11월 총선거에서 대통령보다는 주지사가 누가 되느냐에 관심이 더 많다. 미국의 운명은 자기들이 사는 주나 도시의 삶의 질이 결정한다는 지방정신이 충만하다.

콜로라도의 주도(州都)인 덴버 광역시는 주민이 200만명인데 그중 교포는 3만명 정도다. 여기서 지역언론사를 운영하고 있는 강영한씨는 "한 천만명 정도가 한국에서 쏟아져 들어와도 흔적도 없이 흡수할 수 있다. 그만큼 미국은 크고 수용능력이 있다"고 했다. "청년실업, 사오정 실업, 노년인구 문제들을 미국 이민으로 풀겠다는 진취적인 이민정책을 한국 정부가 취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주변의 교포들과 함께 '덴버로 이민 오세요!'라는 광고를 국내에 낼 작정이다. 덴버에 인접한 오로라라는 신도시의 에드 타워 시장은 기자와 만나자마자 "한국의 도시들과 인적.물적 교류를 증진할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한창 성장하는 덴버나 오로라 같은 도시들은 한국 쪽에서 적절하게 접근만 해준다면 연방정부를 설득해 이민규제를 완화할 여러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교민들은 얘기했다.

한국인의 미국 이민은 올해로 101년째다. 1903년 고종 황제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102명의 집단이민을 허락한 게 처음이었다. 그 뒤 독립운동을 위한 이민, 징병.징용 같은 강제이민, 개인 차원의 생존형 이민이 이어졌다. 6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대엔 외국자본을 빌리는 대가로 독일에 광원과 간호사를 내보낸 산업형 이민이 있었다. 최초의 이민정책이었다. 이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제2의 이민정책이 제안되고 있다. 국내에서 찾기 힘든 일자리를 외국에서 찾아 보자는 경쾌한 지역 이동의 상상력이 아닐까.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