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반쪽 공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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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녕 정책기획부 기자

지난 25일 서울 은평구 보건사회연구원 대회의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린 이곳은 200여명의 참석자 열기로 후끈했다.

휠체어와 목발을 짚은 장애인들은 "차별금지법이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시각을 교정하고 처우를 개선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토론자의 말에 박수를 보내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날 초청된 9명의 토론자는 법학자들과 장애인단체, 시민단체, 복지관련 연구소 임원이 전부였다. 방청석도 장애인단체 회원이 다수였다.

하지만 정작 법에 규정된 의무를 지켜야 할 당사자인 기업.교육계의 참석자는 없었다. 이들의 입장을 대변할 인사들은 공청회에 초청받기는커녕 법 시안을 제대로 알고 있지도 못했다.

경총 관계자는 "신문을 보고서야 법 시안의 내용을 알았다"고 말했다. 기협중앙회 관계자는 이 법이 중소기업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을 정도다.

이 법이 시안대로 시행되면 학교장은 장애인이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기업주는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시설.설비를 갖춰야 한다. 또 예식장.목욕탕 등은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한다. 지키지 않으면 이행강제금과 함께 징역.벌금형도 받는다.

그런데도 '중립적'인 전문가와 장애인이 주도하는 공청회 현장에는 현실적인 문제를 짚어보자는 의견은 거의 없었다. 시행 10년이 넘은 장애인 의무고용제도가 왜 아직까지 정착이 안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도 드물었다.

법이 아무리 훌륭해도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커 지키기 어렵다면 의미가 없다. 수많은 잠재적 범죄자만 양산하고 장애인들의 고통과 불신은 더 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공청회를 준비한 보건복지부는 장애인과 기업.교육계 등 이해당사자 모두의 의견을 듣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승녕 정책기획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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