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나다>증권회사 다니며 소설 '브로커'쓴 장재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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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마피아.킬러.도청.작전.음모.의문사….증권브로커의 애환을 다룬 소설'브로커'에는 투자.매매.수익같은 주식과 관련된 말보다 이런 살벌한 단어들이 더 자주 등장한다.무대는 증권거래소를 중심으로 한 서울 여의도지만 미국 시카고에서 건너온 검은 돈이 줄거리를 끌고간다.그 검은 돈의 희생양은 한국의 증권브로커,즉 약정(주식매매액)올리기에 허덕이는 증권사 영업직원들이다.

“저 자신의 얘기를 쓴 겁니다.증권브로커의 한 사람으로서 증권가의 실상과 애환을 알리고자 쉽게 읽을수 있는 소설의 형식을 빌렸습니다.대중소설로 재미있게 읽히도록 미스터리 형식으로 꾸몄고요.”

작자 장재영(34.선경증권 시장과)씨는 본사에서 여의도 증권거래소에 파견돼 현장정보를 수집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깡마르고 단단한 체구는 뭔가 속에 쌓인 것을 토해놓지 않고는 못견디는 원초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방황해온 간단찮은 행장을 느끼게 해준다.길지않은 그의 삶은 꿈과 좌절의 연속이었다.그는 어려서부터 글쓰기와 꿈꾸기(상상)를 좋아했다고 한다.그래서 경북대에 진학하자 대학신문기자가 됐다.그러나 대학졸업후 마음에 둔 기자직을 얻지 못했다.대충 얻은 전자회

사 영업직은 성에 차지 않아 1년만에 팽개쳤다.

'꿈의 산업'이라는 영화 공부를 위해 미국 LA유학을 계획했다가 부모의 반대가 심해 전공을 경영학으로 바꿔 하와이를 택했다.교포상인들에게 도시락 배달하기,호텔 주차관리등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석사학위를 받았다.미국에 눌러앉으려는 생각에서 교포가 운영하는 관광회사에 취직했다.그러다가 글쓰기의 미련을 버리지 못해 관광안내잡지의 기자로도 일했다.

그런데 진짜 꿈에 그리던 할리우드를 찾아가 눌러앉으려고 하던중

LA폭동이 터졌다.폐허 속에서 흑인폭도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한인들의

모습은 그의 아메리칸 드림을 깨끗이 씻어가 버렸다.

귀국은 했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기다리는 것은 아니었다.사업을

시도했다가 하와이에서 애써 모은 돈을 날리고 빈털터리가 돼 낙향한 것이

93년말.매일 집근처 영남대 도서관에 출근,미련을 떨치지 못한 글쓰기에

본격적으로 매달려 3개월만에 첫번째 소설'태양의 몰락'을 탈고했다.무명의 출판사에서 펴냈던 처녀작은 참담한 실패.

94년8월 현실로 돌아온 그가 찾은'제대로 된'첫 직장이

선경증권이었다.대구지점에 발령받아 두 팔 걷어붙이고 매달렸다.그런데

취직 직후 주가가 사정없이 빠지기 시작했다.

“나이도 들고,경영학석사라는 타이틀까지 걸고 들어왔는데 실적을

못올리니 답답하죠.급하면 친인척 돈을 끌어서라도 실적을 올리는게

관행이지만 주위에 그럴만한 사람도 없었죠.고객에게 시달리던 한 선배가

투자 손실을 자기 돈으로 물어주기

위해 아파트를 파는 걸 보니까'또 길을 잘못 들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가 찾은 탈출구는 다시 글쓰기였다.때마침 서울 본사로 발령받아

증권거래소에서 근무하며 거래현장에서 매일 부닥치는 증권가의 브로커를

소재로 상상력을 가미하기로 했다.지난 겨울 매일 오후11시까지 회사에

남아 원고와 씨름한 끝에 3부작을 탈고했다.“노다지를 쫓아 미친듯 헤매는 신기루 같은 곳.인간들은 기뻐 날뛰다가 순식간에 텅 빈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분노하고 좌절하는(…)천국.지옥이 공존하는 곳.”

“이번엔 이상하게도 일이 잘 풀리네요.존 그리샴의 소설'타임 투 킬'이

그랬던 것처럼 내 소설도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었다. 〈오병상 기자〉

<사진설명>

객장에 앉아 소설을 구상하고 간혹 영화만들기를 꿈꾸는

사람,장재영이다.〈최승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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