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환/자 -고용곤 연세사랑병원 원장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9월, 진료실에 들어선 이숙신 할머니는 60대 중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젊고 활기찼다. 퇴행성관절염을 앓은지 3년. 처음엔 통증이 심하지 않아 파스를 붙였다고 했다. 이후 잠을 설칠 정도로 통증이 심해져 내원당시엔 걷는 것조차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뭐든 써먹으면 낡기 마련이지. 늙어서 그러려니 하고 죽는 날만 기다리는데 영감이 데려왔어요. 의사 선생이 완전히 낫게 해줄 거라고 그러데요.”“아…예. 관절염을 완전히 낫게 하는 방법은 아직 없습니다. 다만 이전보다 아프시지 않고 걷는 데 지장 없이 해드릴 순 있지요.”“그기 그거지 뭐. 안 아프면 돼. 안 아프면…. 안 아프면 돌아 댕길 수도 있고, 잠도 잘 잘기고, 그기 낫는 기지 뭐라. 영감 말대로 훌륭한 의사 선생이구만.”

할머니는 한눈에 긍정적인 삶을 살아오신 분으로 보였다. 통증이 심해 평소 짜증이 많았을 법한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어떤 문제든 가뿐하게 넘길 것 같은 성품이었다. 수술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할머니와 동행한 할아버지는 상당히 꼼꼼했다. 무릎관절수술이 필요하다는 동네 정형외과 의사의 말에 신문과 잡지를 뒤져가며 전문의를 수소문한 사람이 할아버지였다. 구청 도서관 컴퓨터 앞에서 3일 동안 머무르며 관절 전문의를 검색했다고 했다. 더욱이 스크랩해온 신문을 들여다 보며 수술법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보는 게 웬만한 기자 못잖았다.

“얼릉 수술이나 해주소”라며 재촉하는 할머니와 “성급하게 굴지마라”며 손사래를 치는 할아버지-. 옥신각신하는 두 분의 대화가 마치 만담처럼 들렸다.
할아버지는 궁금증을 다 푼 후에야 수술을 결정했다. 할머니는 퇴행성관절염이 심해 관절내시경을 할 수 없었다. 무릎을 절개해 닳아버린 연골을 깎아내고 새로운 인공관절을 끼워 넣는 여성형 인공관절 수술을 했다. 한쪽 무릎을 수술한 후 7일이 지나 다른쪽 무릎을 수술하는 쉽지않은 일이었지만 할머니는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20여일 입원기간 동안 두 분의 정도 병원 내에선 화젯거리였다. 서로 반찬을 얹어주며 식사를 하고, 병원 밖에 잠깐 나간 할아버지를 휠체어에 앉아 로비에서 기다리는 할머니-. 퇴원 후 재활치료를 받으러 올 때도 두 분은 꼭 함께 나타났다. 퇴원 후 4개월, 예약 차트에 올라와있는 할머니 성함에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전에는 아파서 절절맸는데. 지금은 뛰 댕겨도 안 아파요.”
“아이구, 그러시면 안 되십니다.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게 조심해야 해요.”
“아무리 내가 뛰 댕길까. 말인즉슨 그렇단 얘기지. 하하.”
할머니의 유쾌함에 절로 기분이 좋아질 즈음 할아버지가 끼어들었다.
“와, 춤추는 긴 뛰 댕기는 것과 다르다 카더나?”
처음엔 무슨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는데 사연은 이랬다. 무릎이 나아지자 할머니의 외출이 잦아지셨단다. 할아버지 식사도 안 챙기고 어찌나 돌아다니시는지 할아버지는 그런 할머니를 찾으러 다니는 게 일이 됐을 정도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결국 할머니의 외출 시간을 정해주기로 했단다. 하루에 4시간만 외출하고 나머지는 집에 계시라고 한 것. 아까운 외출 시간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보낼 수있을까 고민하던 할머니는 구청 주민자치센터의 춤교실에 수강신청을 했단다.
“이놈의 할망구가 수술 시켜놨더니만, 춤바람이 나삣다 아잉교….”
그날 두 분이 돌아가시고 난 뒤 하루 종일 히죽거리며 진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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