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동 골목에 그림이 피고 웃음이 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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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공간’은 그곳을 사는 사람들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단순히 삶의 공간이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닫혀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한다. 그런 면에서 공공미술은 관계성이란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 옛날 산업화시대를 이끌어 왔던 서울 금천구 가산동은 살 길을 찾아 모여 든 사람들의 한 평 남짓한 벌집촌이었다. 빽빽이 들어찼던 공장들이 하나둘씩 이전하고 지금은 그 옛날의 활발함은 찾아볼 수 없으나,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몸을 누인다. 다만 그 자리를 대부분 외국인노동자들이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삶의 고단함 때문인지, 집과 집 사이는 불과 10cm안팎이지만 다른 피부색만큼이나 사람과 사람의 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멀다. 심지어 이웃 간에 눈을 마주쳐도 말 한마디 건네기가 어색하다.

금천구는 2008년 초부터 ‘녹색주차마을 만들기’를 통해 가산동 주택가의 담장을 허물어 주차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단순히 주차공간의 확보가 아닌 마음의 담장을 허물기 위한 단초였다. 폐쇄와 단절을 의미하는 담을 허물고 이웃 간에 정을 나누기 위한 행위로 가장 먼저 주택가의 담장을 허물어 주차장을 만들고, 주택가 이면도로는 어린이, 노약자, 장애우 들도 안심하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사람 중심의 보도와 쾌적한 녹지 쉼터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금천구청 도시디자인팀과 공공미술프리즘은 사람과 사람사이 마음의 담장을 허무는 공공미술프로젝트 ‘동네 뜰 만들기’를 진행했다. 그 옛날 ‘동네 뜰’은 자연의 숨결 없이 빽빽이 들어찬 집들 사이에서 사람들에게 어울림의 자리였고, 이야기 마당이었다. 이런 뜰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프로젝트의 진행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렇게 자신들의 뜰을 함께 만듦으로써 이웃 간의 얼굴을 알리고 자연스레 삶을 나누도록 했다.

동네 뜰 만들기는 크게 세 가지로 테마로 이뤄졌다. 그 첫 번째는 가산동 235-63번지 일대에 펼쳐진 ‘주민들과 아름다운 골목길 만들기’로 골목길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예술가,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자연의 향기의 물씬 풍기는 골목길을 만들었다.
70여 미터에 이르는 이 골목길에는 대략 30가구가 벽을 이어가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외국인 근로자가 15가구가 넘었다. 폭이 불과 4미터도 안 되는 협소한 골목길에는 집집마다 키우는 작은 화분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렇게나마 자연을 느끼고 싶었던 주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아름다운 골목 만들기는 자연을 모티브로 했다. 가장 먼저 골목길 입구에는 다세대 빌라의 벽면과 도시가스를 이용해 벽화와 나뭇잎이 펄럭이는 듯한 형상을 그려 넣었다. 자연적 공간으로의 안내를 의미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작은 골목길에 공원을 만들어 줄 수는 없지만, 자연을 그린 벽화로 휴식공원도 만들었다. 공원에서 하는 자전거타기, 달리기, 줄넘기, 인라인 등 공원을 나타내는 그림들이 벽면 곳곳에 가득했다.

벽면에 이어 바닥에는 가산동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그려 넣었다. 이것이 두 번째 테마 ‘이야기 바닥 만들기’다. 자연의 의미가 담긴 낙엽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등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인사말 등을 바닥에 남겨, 이곳을 오가며 이웃들의 소통을 되살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집집마다 주민참여로 이루어진 ‘화분 우체통 만들기’. 총 9집의 주민들이 직접 화분 우체통을 만들고, 만들어진 화분우체통에 이름도 달았다. 집에서 고구마와 김치를 싸들고 온 장장차 할머니도 “골목길이 한 폭의 그림 같다”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표정을 짓는다. 어느새 마음의 담장까지 허물어 진 듯 꽃과 페인트 붓을 든 주민들은 여기저기서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워크홀릭 담당기자 최경애 doongj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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