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정부, 일본통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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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의 차기 행정부·백악관 인선에선 일본계나 지일파(知日派)가 약진하고 있다. 오바마는 7일 사상 두 번째로 일본계 2세를 행정부 각료로 지명했다. 행정부처 가운데 둘째로 큰 보훈부 장관에 내정된 육군참모총장 출신 에릭 신세키(66)다. 그는 2003년 이라크전 개전을 앞두고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국방장관과 수시로 충돌할 정도로 소신이 강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보훈장관으로 지명되자 일본 언론은 반기고 있다.

백악관에선 피트 라우스(62) 선임고문 내정자가 일본의 이익을 대변할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일본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혼혈 일본계다. 그는 상원에서 30여 년 이상 여러 의원을 보좌했으며, 오바마 비서실장을 지냈다. 상원 경험이 풍부해 ‘101번째 상원의원’으로 불릴 정도다. 현재 정권인수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백악관에서 오바마의 정무적 판단을 돕게 된다.

재무장관으로 지명된 티머시 가이트너(47)도 일본이 좋아하는 인물이다. 그는 백인이지만 일본에서 살았고, 일본어를 잘하는 지일파다. 아시아 전문가인 아버지 피터(하버드 대학 아시아센터 고문)를 따라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생활했으며, 재무부 소속으로 도쿄 주재 미국 대사관에 파견돼 근무한 경력도 있다. 다트머스 대학에서 행정학과 아시아학을 전공하면서 일본어와 중국어를 배웠다.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대학원(SAIS)에서는 국제경제학과 동아시아학을 공부했다.

그가 재무장관으로 지명되자 일본 언론인 다카하시 고스케는 아시아 타임스에 “일본에 동정적인 가이트너가 입각하게 돼 다행”이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다카하시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아시아통화기금을 설치하려 했던 일본의 계획을 좌절시킨 로런스 서머스가 재무장관에 지명되지 않아 일본은 안심하고 있다”고 적었다.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제임스 존스 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 사령관은 79∼84년 해병대 대대장으로 일본 오키나와에서 근무했다. 상공회의소 산하 21세기 에너지 연구소 책임자인 그는 올 5월 야나이 슌지(柳井俊二) 전 주미 일본대사와 일본인 기업가, 환경운동가 등을 초청한 자리에서 “미국과 일본은 정치·경제·군사적 동맹국이므로 두 나라가 합심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 국장으로 유력한 데니스 블레어 전 태평양군 사령관은 일본·한국 사정에 밝은 아시아 전문가다. 일본에서 미 함대를 지휘한 그는 일본 정부의 훈장도 받았다. 오바마 캠프에서 한반도 팀장으로 활동했으며, 조 바이든 부통령 당선인 측근인 프랭크 자누지는 일본 게이오(慶應)대 방문 교수를 지냈다. 그는 부통령실이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일할 걸로 보인다.

미 의회에선 일본계 2세로 상원의원 8선을 자랑하는 대니얼 이노우에(84·민주·하와이)가 상원에서 가장 큰 위원회인 세출위원장을 맡게 된다. 지난해 하원에서 가결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강력히 반대하는 등 일본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가 예산심사권을 가진 세출위원장에 내정됨에 따라 미 의회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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