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대기업 임금 올리면 中企에 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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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삼성 회장, 최태원 SK 회장, 조석래 효성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왼쪽부터) 등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의 ‘경제활력 회복을 위한 대기업 대표와의 대화’에 앞서 간담회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노무현 대통령과 15대 대기업 총수들의 25일 청와대 회동은 예정시간인 2시간을 1시간15분이나 넘겨 진행됐다. "커피 브레이크를 할 정도로 진지하고 화기애애했다"는 게 김영주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의 전언이었다. 지난해 6월 삼계탕집 회동과 지난 1월 청와대 오찬 간담회에 이어 세번째다

盧대통령은 인사말에서 "한 분 한 분을 보니 지난 한 해 어렵게 지내왔던 것을 느낀다"며 "여러분도, 정치권도, 나도 어려웠다"고 했다. 대선자금 수사로 곤욕을 치른 기업과 탄핵심판에 처했던 자신의 입장을 빗댄 듯했다. 그러면서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출발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盧대통령은 또 "대통령 임기는 5년이니 여러분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국민경제를 위해 노력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날 盧대통령은 재계의 국내 투자 확대를 거듭 당부했다. "자본에는 국경이 없고 우리 기업들이 아무리 세계경영을 하더라도 여러분은 한국의 기업인"이라며 "이윤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더라도 애국심을 갖고 경영하리라는 믿음이 있다"고 지적했다. 盧대통령은 "자신있게 한국에서 기업하고 투자할 것을 권할 수 있다"며 "기술혁신과 함께 교육혁신을 통해 사람에 관한 한 정부가 확실하게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노사문제와 관련, 盧대통령은 "재계와 노동계 양측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기는 어렵다"며 "정부가 중심을 잡더라도 주요사안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대기업 노사가 높은 수준의 임금을 결정하면 바로 중소기업에 부담이 된다"며 "대화를 통해 타협해 나가야 하니 적극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전경련의 강신호 회장은 "기업인과의 대화에 감사드린다"며 "(지난 1월부터 연말까지) 올해에만 (재계가) 46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며 최고증가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런 취지가 이행될 수 있도록 후속 조치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盧대통령은 우선 "정경유착은 반드시 근절하겠다"고 약속했다. 규제개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제기해 주면 풀어야 할 것은 과감히 풀어나가겠다"며 "필요하면 범정부적 기구나 규제개혁위 산하 기획단을 만들어 대통령이 직접 점검하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규제를 풀더라도 수도권 난개발은 막고 환경보호도 이루는 등 조화를 이루겠다"고 덧붙였다.

盧대통령은 지난 15일 복귀 직후 강조했던 장기경쟁력을 위한 '경제의 원칙'을 이날 다시 강조했다. 재계의 최대 관심사인 출자총액제한 제도와 관련, 盧대통령은 "시장투명성과 지배구조의 투명성은 세계적 추세"라며 "이 문제에 대한 공방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가급적 원칙을 존중하고 협의할 사항이 있으면 (재계와) 협의하겠다"고 '원칙 속의 사안별 협의'라는 기존입장을 고수했다.

대기업 총수 등 참석자들은 이날 전원이 발언을 했다고 金수석은 전했다. 김재철 무역협회장은 수출지원과 자유무역협정의 적극 추진을 요청했다. 이건희 삼성회장은 "사회적 책임의 나눔 경영, 상생 경영을 추진하겠다"면서 "사회의 소모적 다툼을 끝내야 하고, 청와대뿐 아니라 국민.기업.사회 전부가 화합.상생하는 국가운영이 됐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구본무 LG 회장은 기업의 수도권 보유 부지 내 연구개발(R&D) 센터 건립 허용과 이공계 지원 강화, 관광.레저산업의 10대 성장동력 산업 지정을 요구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세계적으로 자동차 공급 능력이 6400만대인데 수요는 4500만대인 만큼 기술개발이 강화돼야 한다"며 R&D투자 세액공제 확대 및 관련 인력의 확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용경 KT 회장은 휴대 인터넷의 조기 상용화, 정보화 추진 중소기업에 대한 세제지원, 부실기업 금융 지원에 의한 우량기업 피해 방지책, 철강제품 원자재에 대한 무세화, 임시투자세액 공제 기한 연장 등을 요청했다. 이와 함께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은 서비스 산업의 획기적 육성과 사회간접자본 투자 활성화를 기대했다.

강신호 전경련 회장은 "기업별 투자 및 고용계획 보고대회를 열 예정"이라며 盧대통령의 참석을 요청했다. 盧대통령은 쏟아진 재계의 건의에 대해 이헌재 경제부총리로 하여금 "개별적으로 따져 실효성 있는 제도가 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김영주 수석은 "이날 논쟁이 된 것은 없었고 전반적으로 규제 쪽 얘기가 나왔을 때 盧대통령이 강조를 많이 했다"며 "경제위기에 대한 盧대통령의 언급에 기업 대표들은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金수석은 또 대통령의 시장개혁 원칙 강조에 기업 측 반응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없었다"고 답했다.

최훈 기자<choihoon@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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