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출판 앞둔 새봄을 기다리는 저자 4人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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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전북장수군 부연마을.전형적인 두메마을이다.한겨울엔 영하20도 밑으로 내려간다.재야(在野)사학자 이이화(전역사문제연구소장)씨가 홀몸으로 이곳에 내려온 지 벌써 1년7개월.엄동설한(嚴冬雪寒)이 두번이나 지났다.

그가 현재 머무르는 곳은 폐교된 초등학교 관사.시멘트 건물이라 겨울이면 한기(寒氣)가 더욱 매섭다.양동이에 받아놓은 물이 얼어붙을 정도.그러나 李씨 마음은 어느 때보다 훈훈하다.야심작 한국사 24권(한길사刊)의 서두인 고대사 부분

의 집필을 마무리한 까닭이다.지금까지의 연구역량을 누에가 실을 잣듯 서서히 풀어놓을 작정이다.

“우리 고대는 갖은 전란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한민족의 저력을 응축한 시기입니다.또한 의복.음식등 생활문화의 기초가 닦인 시대지요.”책 출간을 앞둔 李씨의 변(辯)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대지에 봄바람이 불어온다.한보비리.황장엽(黃長燁)북한 노동당비서 망명.경기침체등으로 어지러운 정세속에도 자연의 섭리는 어김없어 소생과 부활의 계절인 봄이 성큼 다가왔다.봄은 새로운 탄생을 약속하는 약동의 계절.李씨

외에도 출판계에는 수년간의 노력끝에 올봄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40년 넘게 한국영화관련 자료를 수집하며 충무로의 영화박물관이란 애칭이 붙은 정종화씨.평생 발로 뛰며 모은 자료를 정리해'자료로 보는 한국영화사'(열화당)두권을 지난 겨울 탈고했다.

“전에 낸 포스터 모음집이나 충무로 비화선집 수준을 넘어 한국영화의 발자취를 객관적으로 재조명했어요.”

이번에 그는 1919년 한국영화 태동기부터 최근까지 우리 영화의 흐름을 각종 포스터.신문광고.미개봉 영화기사등을 통해 한눈에 보여줄 작정이다.그동안 발이 닳도록 여러 지방과 언론사.국립중앙도서관을 순례해 얻은 한국영화의 산 기록들

이다.“영화를 좇아 살아온 세월을 점검한다는 뜻에서 한줄한줄 써내려갔다”고 한다.

미술평론가 오광수(환기미술관장)씨도 오랜 활동에 한획을 긋는 세권의 책을 동시에 선보인다.한국 현대미술을 수놓은 거장들을 일일이 논의한'20인의 한국 현대미술가'(시공사)를 다음달말 내놓는다.1권에는 이상범.변관식.장우성등 동양화

가,2권에는 도상봉.이중섭.박수근등 구상계열 서양화가,3권에는 김환기.남관.유영국등 추상계열 서양화가를 다뤘다.

“이번에 거론 안된 작가들도 정리할 계획을 세워 놓았어요.”앞으로 계속될 평론활동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는 자평이다.

대전중앙신경정신과 김영진원장은 '기쁨 반,슬픔 반'이다.지난 10여년의 진료경험과 각종 이론을 모아 '광기의 사회사'(황금가지)라는 역저를 다음달 펴낸다는 의미에서 기쁘고,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정신병치료 상황 때문에 슬프다.이 책에서 그는 중세부터 최근까지 정신질환 치료의 변천과 사회적 환경을 조명했다.최근 우리사회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부상한 정신질환에 대한 현명한 대응책을 모색하자는 것이 목적.

“열악한 우리 상황에 대한 고려없이 서구의 이상적 모델만 좇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에요.”그러나 현실반성이 미래발전의 열쇠이듯 새봄을 맞은 金씨 마음의 저울추는 우리 나름의 지혜찾기로 기울어져 있다. 〈박정호 기자〉

<사진설명>

이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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