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귀족사회 아니었다-가톨릭대 유승원교수 논문서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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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고려시대는'귀족사회'라는게 지금까지의 통설이었다.여기에 한 중견 역사학자가 10여년의 연구 끝에 반론을 제기했다.여말선초(麗末鮮初)의 신분제를 연구해온 유승원(가톨릭대)교수가'역사비평'봄호에서'고려사회는 귀족사회가 아니었다'는 주

장을 폈다.일제시대 역사학자인 안확.백남운을 비판하고 현 원로학자인 변태섭.이기백.박용운교수까지 겨냥해 학계에 파장을 일으킬 것같다.

기존의 고려 귀족사회론은 소수 문벌이 대를 이은 정권장악,5품이상 고급관료에 대한 관직과 부의 세습을 가능케 한 음서제(蔭敍制)와 공음전시법(功蔭田柴法),소수 귀족의 폐쇄적인 통혼을 그 골자로 했다.그러나 유럽.중국.일본등의 사례

를 비교 검토해 세습적 특권이 법제에 의해 직접적이고 명시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귀족사회의 준거를 제시한 유교수는 기존의 학설과 달리 고려사회가 이런 근거에 합당한 귀족사회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특히 귀족사회론의 근거로 이해돼온 음서제와 공음전시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함으로써 귀족사회론의 근본을 직접 공격하고 있다.유교수에 따르면 고려사회에서 과거제와 실적제가 제기능을 발휘하고 있었으며 능력주의.경쟁의 원리가 내포되는등 오히려 반귀족제적 성격까지 띠고 있었다고 주장한다.그는 이로써 한국사를'출생의 원리'보다'경쟁의 원리'에 의해 바라보는 발전사관적 시야가 그만큼 넓어졌다고 설명한다.

귀족사회론에 대한 일부 반론은 70년대 박창희(전 한국외국어대)교수에 의해 제기된 바 있으나 관련학자들의 무관심으로 활발히 논의되지 못했다.문제제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역사학계의 풍토와 실증적 연구의 성과 부족 때문.그러나 탄탄한 실증적.이론적 기반을 토대로 한 유교수의 문제제기에 대해 학계도 침묵만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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