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정부 믿고 용기내 투자해달라" 기업 총수에 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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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대기업 회장들을 만났다.지난해 6월 삼계탕집 회동과 지난 1월 청와대 오찬 간담회에 이어 세번째다.이날 회동은 "투자 장애 사유를 구체적으로 분석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해온 盧대통령이 기업 최고경영자들을 직접 만나 애로 사항을 청취하고 적극적인 투자를 요청하기 위한 것이라고 청와대측은 밝혔다.이를 위해 정부측에선 주요 참석 기업들에게 투자와 고용창출을 가로막는 구체적인 제약 내용이 무엇인지 챙겨와 달라는 요청을 했다.

盧대통령은 간담회 인사말에서 "한분 한분을 보면서 지난 한해 어렵게 지내왔던 것을 새삼 느낀다"며 "여러분도 어려웠고 정치권도 어려웠고,저도 어려웠다"고 말문을 열었다.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탄핵 정국 등에 대한 소회인 듯 했다.

이날 회동과 관련해 盧대통령은 "구체적인 여러가지 입장이 있겠지만 국민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는 자리였으면 좋겠다"고 했다."(경제 문제와 관련해) 국민들의 걱정이 많으므로 여러 말씀을 주시면 좋겠다"며 기업측의 투자 전망을 기대하고 있음을 시사했다.盧대통령은 또 "요즘 일반적으로 경제가 어렵다고 하고 심하게는 위기라며 걱정하는 것과 관련해 여러 진단이 나왔지만 경제를 이끄는 여러분께 직접 생생한 진단을 들어보고 처방도 함께 마련하는 자리였으면 한다"며 "그 점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盧대통령은 "언론이나 경제단체에서 제기하는 어려움을 분석해 보면 그 논의가 꼭 정확한 것만은 아닌 것 같고,실제 좀 핵심을 비켜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지적했다."과연 오늘의 상황을 올바로 진단하고 사회적 의제를 올바르게 선정해 국민적 합의를 모아가고 있는지 짚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盧대통령은 "이점에 관해 정부와 재계,노동계와 일반 국민이 모두다 공감하는 의제를 갖고 인식과 합의를 모아가야만 국민경제를 올바르게 살려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그런 문제를 짚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盧대통령은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정부 정책을 비판하다 보니 객관적인 실상에서 벗어난 논의가 있다"며 "재계와 노동계가 각자 추구하는 목표가 있는데 그것이 우리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도 했다.

盧대통령은 직무복귀 직후 가진 대국민 담화에서 "개혁을 저지하기 위해서나 자기에게 불리한 정책을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경제 위기를 확대해서 주장하고 불안을 조장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또 "어렵다는 이유로 당장의 발등의 불을 꺼야 한다는 이유로 원칙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시장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의사를 밝혔다.이에 따라 이날 간담회에서 盧대통령은 정부와 재계간의 현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차의 원인을 따져보면서 시장개혁의 필요성을 재계 관계자들에게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철규 공정거래 위원장은 간담회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시장의 룰을 만들자는 것이 투자를 가로막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 회동을 앞두고 재계도 분주하게 움직였다.삼성 이건희 회장이 22일밤 입국하는 등 외국에 장기간 머물던 재계 총수들이 회동을 앞두고 속속 귀국했다.각 기업 관계자들은 21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모여 지난 1월 청와대 회동에서 총수들이 밝힌 그룹별 올해 투자계획을 품목,금액까지 상세히 점검하고 투자관련 규제해소 방안에 대한 건의 내용을 논의했다.기업들은 간담회에서 연초에 제시한 투자 외에 추가 투자 및 고용 계획을 밝혀 경제살리기에 고심중인 정부에 '선물'을 주기로 의견을 모았다는 후문이다.그 결과 재계는 이날 간담회에서 盧대통령에게 삼성 3년간 60조원,LG 2010년까지 50조원 등 15대 그룹의 중장기 투자 전망을 제시했다.

간담회에서 4대 그룹 총수들은 향후 투자를 최대한 늘리면서 장기적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 분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또 일부 참석자는 "우리같은 죄인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해 부적절한 관행이 끼친 영향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전달했다고 한다.나머지 그룹 관계자들은 투자 활성화를 위해 규제 완화가 절실하는 점을 강조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그러나 재계는 정부가 추진중인 민감한 개혁 방향에 대해선 되도록 언급을 자제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간담회에 앞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출자총액제도 완화 등이 기업이 원하는 게 아니냐"며 "투자를 활성화하는 데 첫 걸림돌은 노사문제이고 둘째는 방만한 투자인데 지금은 방만한 투자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말했다.

강신호 전경련 회장은 "대통령이 두달 동안 쉬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했을 것 아니냐"며 "단기적으로 경제를 부양하는 대책들은 큰 효과가 없는 만큼 장기적으로 대통령이 경제발전을 위해 연구한 것을 주장해 10년이나 20년후에 '그게 맞았다'는 칭송을 받는게 중요하다"고 했다.그는 "국민 과학화 운동이나 기술 발전 방안 등 대통령이 중요한 것 한두개를 집중적으로 주장하는 게 바람직하다"고도 했다.

LG 구본무 회장은 "오늘은 하고 싶은 얘기보다 듣고 싶은 얘기가 많다"고 했고,삼성 이건희 회장은 '재계와 청와대간 화해의 자리가 되느냐'는 질문에 "상식적인 물음"이라며 "청와대와 기업 뿐 아니라 국민과 기업,사회 전부가 화해가 돼야 하고 화합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盧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시장개혁과 관련해 "자유롭고 공정하며 투명한 시장을 구축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자 국민적 합의도 있을 뿐 아니라 이것 없이는 노사간 대화도 어렵다"는 원칙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그러나 지난 17일 경제상황 점검회의때 밝힌 대로 "구체적인 방안은 재계의 의견도 수렴해 마련해 나가겠다"는 수순도 제시했다.특히 盧대통령은 "노사간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는 것이 올해 정부의 최대 과제"라며 노사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그러면서 "규제 문제등 중요한 경제 현안은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있으니 정부를 믿고 용기내 투자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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