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하자 먹고살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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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호 35면

‘아, 장사하자 먹고살자 오늘도 방실방실…’. 하찌와 TJ가 부른 ‘장사하자’의 한 구절이다.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 먹고살자는 노래가 사람을 끄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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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먹고살자는 말, 의미가 간단치 않다. 직접 이 말을 쓴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역사학자 앨프리드 크로스비는 그런 정신이 유럽에서 과학기술 발전의 계기가 됐다고 봤다.

그의 책 『수량화 혁명』에 따르면 상업과 기술 현장에서 정확한 측정과 계산법이 등장했고, 이것이 쌓이고 쌓여 유럽 과학혁명의 밑거름이 됐다고 한다. 유럽이 세계적 패권을 거머쥔 것은 수량화를 지향하는 세계관의 변화 덕분이라고 크로스비는 풀이했다.

이 혁명은 고매한 학자나 계몽군주가 주도한 게 아니었다. 대개는 민초들이 장사하고 먹고사는 데 편하게 만들고 고치면서 일어난 것이었다.

우선 숫자의 용도가 바뀐 것도 이들 덕분이었다. 신학이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선 특정한 수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게 중요했다. 예컨대 3은 삼위일체의 수이므로 신성하고, 6은 천지창조에 걸린 날이므로 완전수이고, 10은 십계의 수이며…. 수를 어떻게 편리하게 써먹을까보다는 이처럼 숫자 자체에 형이상학적 의미를 붙이는 데 힘을 쏟았다. 게다가 수는 2에서 시작한다고 믿고 있었다. 1은 수가 아니라 ‘수의 씨앗’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먹고살기 바쁜 백성에겐 이는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장사하는 데 편리하도록 플러스(+), 마이너스(-) 기호를 만들고, 우수리를 정확히 셈하기 위해 소수점도 고안했다. +와 -는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1483년 처음 등장한 것이다. 상인들이 장부를 정리하면서 남고 모자람을 쉽게 알아보도록 습관적으로 사용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계산에서 1을 처음 인정한 사람은 소수점 표기를 발명한 네덜란드의 기술자 시몬 스테빈이었다.

중세 때 인정하지 않던 음수에 시민권을 준 것도 상업 현장이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양초 10개를 모두 8원에 샀다고 치자. 그런데 어떤 양초는 한 개에 1원이고, 어떤 것은 2원이다. 각각 몇 개씩 샀는가.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한 우리 초등학생들이라면 1원짜리를 x개, 2원짜리를 y개로 놓고 x+y=10, x+2y=8이라는 방정식을 세울 것이다. 답은 x=12, y=-2가 된다.

하지만 음수를 인정하지 않던 중세 유럽에선 이는 정답이 없는 불가능한 문제였다. 그러다 15세기 말 프랑스의 니콜라 쉬케가 간단히 생각을 바꿔 버렸다. 1원짜리 초 12개는 현금으로 사고, 2원짜리 2개는 외상으로 샀다, 이게 왜 불가능한 문제냐. 음수를 장부상의 부채로 해석했던 것이다.

이런 장사 셈들이 모여 유럽의 수학적 지평을 확 열어젖혔다. 이게 과학기술 발전의 토대가 됐다는 게 크로스비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중세 유럽의 개안을 촉진한 실용정신이란 따지고 보면 단순했다. ‘장사하자 먹고살자’, 그거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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