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경제개혁 멈추지 않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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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현실을 존중하나 경제개혁은 계속 추진하겠다."

인구 10억명의 '인도 호(號)'를 끌고 나갈 만모한 싱 신임 총리가 서구 사회에 잘 알려진 인물들을 내각에 전진 배치했다.

인도 총선에서 성장보다 분배 위주의 공약을 내건 국민의회당이 집권하자 뭄바이 금융시장이 크게 동요한 데 따른 것이다.

이로써 국민의회당의 대승과 소냐 간디 당수의 총리직 고사 등으로 혼미를 거듭했던 인도의 정치.경제 상황은 일단 수습 국면에 들어갔다.

하지만 싱 정권의 앞날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국민의회당을 포함한 국민의회 연합이 의회 의석(545석) 중 217석만 확보한 상황에서 좌파 연합(64석)이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농촌 지역과 빈곤층(약 7억명)을 무시하는 정책을 채택하다간 연립 정권이 조기에 무력해질 위험도 있다.

◇"시장.기업을 달래라"=올해 72세인 싱 총리는 '인사가 만사'라는 격언을 철저히 따랐다는 인상이다. 실권이 있는 28개 부처의 각료들을 임명하면서 ▶국민의회당 출신으로 개혁 성향을 가진 전문가 그룹을 대거 발탁한 것이다.

신임 치담바람(58)재무장관은 미국 하버드대 출신에다 1996~98년에도 재무장관을 지냈다. 91~96년 재무장관을 지낸 싱 총리의 뒤를 이어 관세.세금 인하 정책과 시장 경제 확대에 나서 인도 경제의 도약을 가능케 했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경제개혁의 설계자란 별명을 갖고 있는 싱 총리와 함께 개혁.개방을 추진할 주역이 될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홍콩.싱가포르의 금융계 인사들은 "두 사람이 인도 경제를 이끈다면 일단 개혁은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다"는 반응이다.

경제 각료에는 민간 기업인 출신이나 과거에 개혁 정책을 추진했던 인물을 발탁했다. 카말 나트 상공장관과 아르준 싱 인적자원개발장관, 다야니디 마란 정보통신장관 등이 그런 사례다.

간디가(家)의 가신 그룹도 주요 부처를 차지했다.

외무장관에는 소냐 간디 국민의회당 당수의 측근인 나트와르 싱이 기용됐다. 그는 파키스탄과 미국.중국.영국에서 근무했던 외교관 출신이다. 국방.내무장관은 국민의회당 중진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개혁 후퇴'는 불가피=싱 총리는 지난 23일 조각 명단을 발표하면서 "국가 차원의 전략적인 분야는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석유.천연가스.철강.통신.중공업 등에 포진한 공기업을 국영 체제로 이끌고 가겠다는 발언이다.

연정 파트너인 좌파 연합의 목소리를 일정 부분 수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농업 분야에 대한 재정 지원과 관세 인하 반대, 교육 투자 확대 등도 채택됐다. 특히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위해 도입하려던 자유로운 고용.해고 정책과 규제 완화 정책은 벽에 부닥쳤다.

싱 총리는 경제성장률 목표를 7%대로 잡았다. BJP정권 시절에 이룩했던 연 8%대보다 낮은 수치다. 농촌.빈곤층 지원에 눈을 돌리다 보면 성장 속도가 둔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외교 정책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오랜 숙적인 파키스탄과의 관계에선 "국경을 침범하거나 테러를 일으킬 경우 단호히 대처하겠다"며 선을 그었다. 국민의회는 그동안 "BJP정권이 파키스탄에 너무 유화적이고 친미 일변도로 흐른다"고 비판해 왔다.

중국.러시아와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제3세계의 맏형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국민의회 연립정권은 "한국과 일본.동남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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