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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 집권 철학 ‘홍’에서 ‘전’으로 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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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중국 공산당의 집권 철학이 담긴 핵심 키워드가 지난 30년간 이념에서 실리로 변해온 사실이 통계 분석에서 확인됐다. 중국 용어로 이념을 뜻하는 ‘홍(紅)’에서 실리·전문성을 뜻하는 ‘전(專)’으로 이동한 것이다. 같은 기간 동안 혁명·투쟁·무산계급 등 이념 색채가 짙은 용어들이 사라진 반면 발전·건설·경제 등 실용주의적 용어가 대거 등장했다고 유력 주간지 남방주말(南方周末)이 최근 보도했다.

이 잡지는 ‘중공 당 대회 보고의 30년간 키워드 변화’란 특집에서 1977년 이후 열린 일곱 차례의 당 대회 업무보고 문건을 분석했다. 또 수만~수십만 자의 당 대회 업무보고서에 등장한 단어의 빈도를 집계했다.

77년에 열린 11차 당 대회에선 ‘마오 주석’ 단어가 214회나 등장해 1위를 기록했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이듬해 열리다 보니 마오쩌둥(毛澤東)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게 남아 있었다. 사인방(四人幇)·당·무산계급·혁명·사회주의·투쟁 등이 자주 눈에 띄었다.

82년에 열린 12차 당 대회에서는 단합을 강조하면서 ‘우리들(我們)과 당’이 가장 많이 등장했다. 이 대회부터 건설·경제·발전이란 용어가 전면 부상하기 시작했다. 마오가 지명한 후계자인 화궈펑(華國鋒)을 축출한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이 본격화한 시점과 맞물린다.

87년 13차 당 대회, 92년 14차 당 대회, 97년 15차 당 대회에서는 각각 ‘사회주의’가 가장 많이 등장했다. 소련과 사회주의권 붕괴를 경험하면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의식적으로 강조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이 시기 중국 공산당은 사회주의 간판을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발전·건설·경제에 주력했다.

13차 당 대회에서는 기업가·재산권·경제특구 등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신조어가 쏟아졌다. 덩샤오핑이 사망했던 97년에 열린 14차 당 대회에서는 추모 분위기의 영향으로 ‘덩샤오핑’이 수차례 등장했다.

개혁이란 용어는 87년 13차 당 대회 때 가장 많이 등장한 뒤 89년 천안문(天安門) 민주화 시위를 겪으면서 급격한 하향 곡선을 그렸다. 지난해 열린 17차 당 대회에 와서야 다시 ‘개혁’의 사용 빈도가 늘었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집권한 16차 당 대회(2002년)와 17차 당 대회에서는 마침내 ‘발전’이 1위로 올라섰다. ‘건설’의 사용 빈도도 2위로 올라섰다.

17차 당 대회에서는 ‘제도’라는 용어의 사용 빈도가 높아진 것도 눈에 띄었다. 법과 제도에 의한 통치를 강화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후 주석의 집권 이념인 과학적 발전관과 조화사회론에 따라 ‘과학’과 ‘조화’가 집중적으로 부각된 것도 이때였다. 이 잡지는 “당과 사회주의의 등장 빈도는 꾸준했지만 발전과 건설은 30년 동안 시간이 갈수록 사용 빈도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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