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1년] 재앙 걷힌 해안, 그래도 한 겹만 파 보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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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지난달 28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에서 기름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바위를 들어내면 아직도 시커먼 기름덩어리가 보인다. 태안=김태성 기자

지난달 28일 오전,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2리 구름포 해수욕장 인근 해안. 1년 전 기름유출 사고 피해를 당한 곳이다. 시커먼 기름으로 뒤범벅됐던 바닷가 굴 양식장은 다 치워졌다. 바다를 뒤덮었던 검은 기름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바위 틈에는 기름덩어리가 남아 그날의 악몽을 되살리고 있다.

이날 주민 70여 명과 J방제전문회사 직원 10여 명이 하얀 방제복을 입고 포클레인·양수기·삽 등을 동원해 기름 제거 작업을 했다. 주민 중 절반은 60대 이상 노인들이다. 방제회사 직원이 포클레인으로 바위를 들어내자 시커먼 타르가 보인다. 주민들은 호스로 물을 뿌린 뒤 흡착도구로 물 위에 떠오른 타르와 기름을 걷어냈다. 지난해 12월 사고 직후 풍경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굴 양식장 모두 철거=태안 일대가 기름 유출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고는 있다지만 지형이 험해 사람의 손길이 닿기 힘든 지역은 아직도 방제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서해안 유류대책본부 권희태 본부장은 “의항2리를 비롯해 가의도·외파수도·소근리 등 10여 곳은 12월 중순에나 방제작업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항2리 주민 이병석(69)씨는 “동네 해안 곳곳에는 아직도 기름이 많이 남아 있다”며 “모래사장도 15cm만 파면 기름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기름 피해 이후 두통 등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주민들의 생계도 문제다. 사고로 의항리와 원북면 신두리 일대 172ha의 굴 양식장이 모두 철거됐다. 굴 양식장을 다시 세우려면 최소 3∼4년은 걸린다. 생계수단을 잃어버린 주민들은 방제작업에 참여한 대가로 일당(6만원)을 받는다. 그나마 작업이 끝나는 10여 일 뒤면 새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30여 년간 굴 양식을 해온 문경순(56)씨는 “굴 양식으로 연간 4000여만원을 벌었으나 기름 피해 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피해 입증 어려워=주민들은 피해 보상금 지급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나 더디기만 하다. 5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접수된 피해신고 건수는 수산분야 5만4637건, 비수산분야 4만5670건 등 10만307건. 피해 입증 서류를 갖춰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 IOPC)에 보상금이 청구된 것은 2225건(2812억원)에 불과하다. 다시 이 중 보상금이 지급된 것은 53건, 160억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지급된 보상금의 대부분(159억4300만원)은 방제비로, 실질적인 피해 보상금은 9월 연포해수욕장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김모(61)씨가 받은 5700만원이 고작이다. 김씨는 “5월 보상금을 청구하면서 3년치 숙박대장·금전출납부·예약대장·세무자료·인터넷 예약 데이터를 근거서류로 제출했으나, 지급까지 4개월 이상 걸렸다”고 말했다.

이충경(38) 태안군 의항2리 어촌계장은 “보상금 지급이 늦어지면서 대부분의 어민이 빚을 내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안군 김달진 기름 피해 지원대책과장은 “태안 사고 규모가 워낙 커 IOPC에 보상 매뉴얼이 없는 데다 어업활동을 해온 어민들도 객관적 자료를 준비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과장은 “내년 6∼7월부터 지급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안=서형식·김방현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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