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그럽게 그를 매혹하던 '마법의 풀' 담배와 맺었던 끈끈한 정을 죽기살기로 끊고 나서 서씨는 '흡연 여성 잔혹사'(웅진닷컴)를 썼다.
시국 사건으로 끌려가 형사 앞에서 뺨을 얻어맞으며 "담배나 피워대는 ○○ 같은 년들"이란 말을 들었던 1970년대로부터 30년이 흘렀지만 담배 피우는 여자는 아직도 이 사회에서 '죄인이고 마녀'다. 여성 흡연을 터부로 여기는 담배 이데올로기는 너무 공고해서 240쪽이 넘는 책으로도 설명할 길이 없다.
▶ 이 땅에서 담배 피우는 여자로 산다는 일은 지붕 위에 올라앉은 듯 마음 조여야 하는 고문과 같다.
담배에 대해 할 말이 이처럼 많이 쌓여 있는 걸 보고 서씨의 옛 직장 동료이자 소설가인 김훈씨는 말한다. "그 말의 축적은 그 여자의 저항과 억눌림의 무게다."
서씨가 담배를 처음 배운 건 스무살 되던 해 가을, 대학 선배 언니인 천영초씨를 통해서였다. 담배를 권력의 상징,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기던 그 시절 한국 사회에서 담배는 여자를 억압하는 놀라운 물건이었다. 그래서 서씨는 "일탈을 향한 본능적인 욕망, 금기에 저항하려는 자유 의지를 일깨운 담배는 욕망인 동시에 자유"라고 생각했다.
박정희 독재정권 아래서 대학생에게 공부 외에 허용된 건 술과 담배뿐이었지만, 여학생에게는 그나마의 자유도 제한되었으니 잔혹사라 부를 만하다.
담배는 "순종적인 여성이 아님을 드러내는 표식이었고, 남자들에게 '엿 먹어라' 내지르는 감자 주먹이었고, 영혼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해원의 깃발이었다"고 그는 썼다. 금연 권하는 사회에서 왜 여성 흡연자는 늘어나는가에 대한 이유있는 한마디다.
자유와 위안을 주는 담배 한 대를 피우기 위해 벽으로 가려진 곳을 찾아야 하는 흡연 여성의 현실을 두루 기록한 서씨는 이제 담담하게 이별의 노래를 부른다. "여자가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는 것과 담배를 끊는 것 모두 담배로부터의 해방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자유로운 흡연보다 금연이 주는 성취감이 훨씬 크고 강력하다."
정재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