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여성 잔혹사' 쓴 서명숙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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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47.전 '시사저널' 편집장)씨는 얼마 전 이십칠년간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지이자 애인과 헤어졌다. '세상에서 접한 것 가운데 가장 영적인 카리스마를 지녔던' 그였기에 결별은 힘들고 쓰라렸다. 아득한 청춘의 강을 건네준 나룻배, 끝없는 사막 같은 일상을 견디게 해준 오아시스였던 그는 담배였다.

징그럽게 그를 매혹하던 '마법의 풀' 담배와 맺었던 끈끈한 정을 죽기살기로 끊고 나서 서씨는 '흡연 여성 잔혹사'(웅진닷컴)를 썼다.

시국 사건으로 끌려가 형사 앞에서 뺨을 얻어맞으며 "담배나 피워대는 ○○ 같은 년들"이란 말을 들었던 1970년대로부터 30년이 흘렀지만 담배 피우는 여자는 아직도 이 사회에서 '죄인이고 마녀'다. 여성 흡연을 터부로 여기는 담배 이데올로기는 너무 공고해서 240쪽이 넘는 책으로도 설명할 길이 없다.

▶ 이 땅에서 담배 피우는 여자로 산다는 일은 지붕 위에 올라앉은 듯 마음 조여야 하는 고문과 같다.

담배에 대해 할 말이 이처럼 많이 쌓여 있는 걸 보고 서씨의 옛 직장 동료이자 소설가인 김훈씨는 말한다. "그 말의 축적은 그 여자의 저항과 억눌림의 무게다."

서씨가 담배를 처음 배운 건 스무살 되던 해 가을, 대학 선배 언니인 천영초씨를 통해서였다. 담배를 권력의 상징,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기던 그 시절 한국 사회에서 담배는 여자를 억압하는 놀라운 물건이었다. 그래서 서씨는 "일탈을 향한 본능적인 욕망, 금기에 저항하려는 자유 의지를 일깨운 담배는 욕망인 동시에 자유"라고 생각했다.

박정희 독재정권 아래서 대학생에게 공부 외에 허용된 건 술과 담배뿐이었지만, 여학생에게는 그나마의 자유도 제한되었으니 잔혹사라 부를 만하다.

담배는 "순종적인 여성이 아님을 드러내는 표식이었고, 남자들에게 '엿 먹어라' 내지르는 감자 주먹이었고, 영혼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해원의 깃발이었다"고 그는 썼다. 금연 권하는 사회에서 왜 여성 흡연자는 늘어나는가에 대한 이유있는 한마디다.

자유와 위안을 주는 담배 한 대를 피우기 위해 벽으로 가려진 곳을 찾아야 하는 흡연 여성의 현실을 두루 기록한 서씨는 이제 담담하게 이별의 노래를 부른다. "여자가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는 것과 담배를 끊는 것 모두 담배로부터의 해방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자유로운 흡연보다 금연이 주는 성취감이 훨씬 크고 강력하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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